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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2-033 [2025/06/07 18:34] – 만듦 ssio2c32-033 [2025/06/08 20:23] (현재) ssi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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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愚農) 황공(黃公) 묘갈명(墓碣銘) +===우농(愚農) 황공(黃公) 묘갈명(墓碣銘)=== 
-우농(愚農) 황공(黃公)이 별세하신 지 三十여 년이 가까운 동지달 어느날 그 자제+<WRAP 37em justify> 
 +<typo ff:'한양해서'; fs:1.2em; lh:1.5em> 
 +\_**우농(愚農) 황공(黃公) 묘갈명(墓碣銘)**\\ 
 +\_우농(愚農) 황공(黃公)이 별세하신 지 30(三十)여 년이 가까운 동지달 어느날 그 자제 
 +응기(應起)씨가 70(七十)이 넘은 노령으로 내가 사는 영주 유당(由堂) 우사(寓舍)에  
 +찾아와 선대(先代)의 가장(家狀)을 나에게 보이면서 말하기를 「선대인(先大人)께서  
 +가학(家學)을 이어 가난함을 근심치 않고 경학(經學)에 힘썼으나 불행하게도 웅대(雄大)한  
 +뜻을 품고 산림(山林)에 묻혀 살게 되었습니다. 만년에 자제들에게 의(義)로운  
 +방법으로써 가르치고 능히 집안의 규범(規範)을 준수하시다가 세상을 마치셨습니다. 
 +불초(不肖)한 제가 나이 70(七十)이 넘어 지난날을 미루어 상고하건대 많은 잘못을 어찌 
 +다 감당하겠습니까. 부군(府君)의 천추(千秋)의 묘역(墓域)이 황폐(荒廢)하고  
 +침울(沈鬱)하여 온갖 풀이 무성한데 어느 사이 늙음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오직 원하는 
 +것은 백대(百代) 일가의 의분(誼分)으로 은혜로운 한 말씀을 주시면 넉넉치 못한  
 +가문(家門)에 오랜 세월 바탕이 될 것이며,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영광이 되어 어찌 
 +몸 둘 곳이 있겠습니까.」한다.\\
  
-응기(應起)씨가 七十이 넘은 노령으로 내가 사는 영주 유당(由堂) 우사(寓舍)에 찾아 +\_나 또한 늙고 병든 몸이라 어찌 능히 이 일을 하겠는가 마는 하는 수 없이 그  
-와 선대(先代)의 가장(家狀)을 나에게 보이면서 말하기를 「선대인(先大人)께서 가학 +장(行狀)을 살펴 서술하노니, 공의 휘는 병성(昞星)이요자는 극서(極瑞)며,  
-(家學)을 이어 가난함을 근심치 않고 경학(經學)에 힘썼으나 불행하게도 웅대(雄大) +우농(愚農)으로 호(自號)하였다. 멀리 고려 초에 관(官)이 금오위장군(金吾衛將軍)  
-한 뜻을 품고 산림(山林)에 묻혀 살게 되었습니다. 만년에 자제들에게 의(義)로운 방 +태자검교(太子檢校)이신 휘 온인(溫仁)이 관향(貫鄕)을 받은 상조(上祖)가 된다.  
-법으로써 가르치고 능히 집안의 규범(規範)을 준수하시다가 세상을 마치셨습니다. +4()대를 전하여 휘 용(𤨭)은 관(官)이 삼중대광보국(三重大匡輔國)이며 시호(諡號)는  
-불초(不肖)한 제가 나이 七十이 넘어 지난날을 미루어 상고하건대 많은 잘못을 어찌 +(忠敬)이다. 공이 휘 태백(太白)을 생하니 증 우의(右議政)이요, 휘 우(祐)를 생하니 
-다. 감당하겠습니까 부군(府君)의 천추(千秋)의 묘역(墓域)이 황폐(荒廢)하고 침을(沈 + 
-鬱)하여 온갖 풀이 무성한데 어느 사이 늙음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오직 원하는 +증 좌의정(左議政)이요, 휘 천계(天繼)를 생하니 호는 잠재(潛齋)며,  
-것은 백대(百代) 일가의 의분(誼分)으로 은혜로운 한 말씀을 주시면 넉넉치 못한 가 +삼도관찰사(三道觀察使)를 지냈다.\\ 
-문(家門)에 오랜 세월 바탕이 될 것이며,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영광이 되어 어찌 + 
-몸 둘 곳이 있겠습니까。」한다. +\_공이 서울에서 선성현(宣城縣)에 낙향하니, 고을 사림들이 능히 추대하고 예우한 
-나 또한 늙고 병든 몸이라 어찌 능히 이 일을 하겠는가 마는 하는 수 없이 그  +사실이 선성지(宣城誌)에 실려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사이 잠재공(潛齋公)의 묘역과  
-장(行狀)을 살펴 서술하노니, 공의 휘는 병성(昞星)이요'자는 극서(極瑞)며우농(愚 +비갈(碑碣)이 허물어지고 글자가 깎이어 문자의 뜻을 명확히 알기 어려움에  
-農)으로 호(自號)하였다. 멀리 고려초에 관(官)이 금오위장군(金吾衛將軍) 태자검 +우농공(愚農公)께서 분연(奮然)히 정성들여 돌을 다듬고 천추(千秋)의 묘역(墓域)을 고쳐 
-교(太子檢校)이신 휘 온인(溫仁)이 관향(貫鄕)을 받은 상조(上祖)가 된다. 四대를 전 +세우니 가문의 자랑이었다. 그 해가 경자(庚子)(: 1960(一九六〇)) 3(三)월 어느 날이었다. 
-하여 휘 용()은 관(官)이 삼중대광보국(三重大匡輔國)이며 시호(諡號)는 충청공(忠 +이에 공의 추원보본(追遠報本)의 정성이 백세 후에도 전해지지 않겠는가. 8(八)대를  
-)이다. 공이 휘태백(太白)을 생하니 증 우의(右議政)이요,휘우(祐)를 생하니+전하여 휘 한성(漢成)의 호는 취적헌(取適軒)이다. 경학(經學)에 해박 정통하였고  
 +시부(詩賦)를 잘하였으며, 사리(事理)에 통달하였으니 이에 목현(木峴)의 세장조(世庄祖)이시다.\\ 
 + 
 +\_여러 대를 전하여 휘 구석(九錫)의 호는 학남(鶴南)이요, 가선(嘉善)이다. 공께서 
 +이금실[인금(仁今)]에서 목리파(木里派) 목소공(鶩巢公)의 후사(後嗣)로 들어감으로부터 
 +크게 문호(門戶)를 개척하여 모두가 큰 은혜를 입었다.\\ 
 + 
 +\_고조의 휘는 태진(泰鎭)이며 호는 낙서(洛西)이다. 증조의 휘는 오원(五源)이며 
 +호는 운파(雲坡)인데 통정(通政)에 추증되었다. 조의 휘는 종철(宗哲)이요 호는  
 +서산재(西山齋)며 참봉이다. 고의 휘는 영구(英九)요 호는 야은(野隱)이며,  
 +비는 유인(孺人) 아주신씨(鵝州申氏)와 유인 밀양박씨(密陽朴氏)다. 생고(生考)의 휘는  
 +찬구(燦九)요 호는 겸재(謙齋)며 종사랑(從仕郞) 임(任) 문충의(分忠義)이다.  
 +비는 단인 경주최씨(慶州崔氏) 용준(龍俊)의 따님으로 고종 경인(庚寅)(: 1890(一八九〇))  
 +10(十)월 9(九)일에 공을 
 +풍산(豊山) 목현(未峴) 옛집에서 낳으셨다.\\ 
 + 
 +\_공은 태어나심에 특이한 자질이 있었고 지혜가 능히 일찍이 뛰어나 7(七)세 때에  
 +조부 서산재(西山齋)공에게 몽해(蒙解)를 수업 받음에 능히 글자와 어휘를 알아 교육의  
 +독촉을 번거롭게 하지 않았다. 일찍이 선생과 어른의 문하에서 배움을 청하여 
 +고인의 위기지학(爲己之學)을 듣고 감발(感發)한 바가 있었으며 어버이 명으로  
 +계부(季父) 야은공(野隱公)의 후사(後嗣)가 되었다. 또 일은 사실을 따랐으며 학문(學文)은  
 +집안의 업이 되었고 효우(孝友)는 집안의 다스림이 되었다.\\ 
 + 
 +\_어버이가 계심에 뜻을 지극히 하여 몸소 봉양(奉養)을 다하였고 어버이가 돌아가심에  
 +생양(生養)의 예절을 맞추어 슬픔의 형용을 다하였다. 진실로 평일에 바탕되어 
 +길러진 사실이 밖으로 나타난 것이니 종당(宗黨)이 함께 추대하였고 남들도 믿고  
 +복종하였다. 무신(戊申)(: 1968(一九六八))년 10(十)월 5(五)일에 세상을 뜨시니  
 +수(壽)는 79(七十九)였다. 묘는 죽전산(竹田山) 갑좌(甲坐)의 둔덕이다. 배는 예천임씨(醴川林氏)  
 +점혁(占赫)의 따님으로 공보다 먼저 병신(丙申)(: 1956(一九五六))에 졸하니 묘는 죽전(竹田)  
 +쌍건달(雙乾達) 좌좌(子坐)이다.\\ 
 + 
 +\_2(二)남 4(四)녀를 두었으니 남은 세기(世起)·응기(應起)요, 여는 청송  
 +심재운(沈載雲)·안동 권윤환(權閏煥)·상락 김재윤(金在允)·순흥 안희규(安熙圭)이다.  
 +손은 현수(鉉洙)·상수(相洙)·득수(得洙)·율수(律洙)·대수(大洙)·길수(吉洙)·종수(宗洙)는  
 +장방(長房)으로 출계했고, 시영(時永)은 계방(季房)으로 출계했다. 증손 상철(相喆)은  
 +현수(鉉洙)가 생하였고, 상인(相仁)·상봉(相奉)·상석(相奭)은 시영(時永)이 
 +생하였다. 나머지는 기록하지 않는다.\\ 
 + 
 +\_명(銘)하여 이르니,\\ 
 +\\ 
 +근원이 깊은 물은 맑으며, 뿌리가 무성한 나무는 잎도 무성하나니,\\ 
 +이러므로 군자(君子)는 그 넉넉한 후손을 기뻐하느니라.\\ 
 +아름답도다 부자(父子)의 도(道)여, 덕음(德陰)으로 서로 가려주니,\\ 
 +하늘이 어찌 보답이 없으리, 앉아 기다려 계기(契機)를 잡을 지니라.\\ 
 +죽전(竹田)의 그윽하고 아름다운 곳, 봉분(封墳)이 있는 이곳 정결하고 깊은 곳에,\\ 
 +옥돌에 비문을 새기노니, 천년토록 밝게 보일 지니라.\\ 
 +\\ 
 +\_\_갑술(甲戌)(: 1994(一九九四)) 11(十一)월 하순에\\ 
 +\_\_종하(宗下) 황세섭(黃世燮) 삼가 찬하노라. 
 +</typo> 
 +</WRAP>
c32-033.1749288891.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6/07 18:34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