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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2-035 [2025/06/07 18:53] – 만듦 ssio2c32-035 [2025/06/08 20:26] (현재) ssi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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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초황공(鶴樵黃公) 송성기적비문(頌誠紀績碑文) +===학초황공(鶴樵黃公) 송성기적비문(頌誠紀績碑文)=== 
-맹자(孟子)가 말씀하시길「천시는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만 못하다」하였음은 +<WRAP 37em justify> 
-대개 정중대소의 차이를 말한 것이다. 세상만사가 덕을 쌓지 않고서는 성가할 수 +<typo ff:'한양해서'; fs:1.2em; lh:1.5em> 
-가 없나니 쌓은 것이 착하면 복과 경사가 자손에게 미친다 함이라. 불영이 이제  +\_**학초황공(鶴樵黃公) 송성기적비문(頌誠紀績碑文)**\\ 
-초공(鶴樵公)의 가장을 보고 공의 선대(先代)가 경영함이 흡족함과 행의의 독실함이 +\_맹자(孟子)가 말씀하시길「천시는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만 못하다」하였음은 
-이와같았음을 알겠노라. 상고하건데 공의 휘는 병규(昞圭)요 자는 복여(復汝)니  +대개 정중대소의 차이를 말한 것이다. 세상만사가 덕을 쌓지 않고서는 성가할 수가  
-호(自號)를 학초(鶴樵)라 하였다. +없나니 쌓은 것이 착하면 복과 경사가 자손에게 미친다 함이라. 불영이 이제  
-오직 우리 황가(黃家)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중국(中國) 강하를 근원으로 한(漢)나 +초공(鶴樵公)의 가장을 보고 공의 선대(先代)가 경영함이 흡족함과 행의의 독실함이 
-라 전무(新羅 儒理王(五닌 서기二十八년)때 유신 휘락(洛)이 고치에 사신(使臣)으 +이와 같았음을 알겠노라. 상고하건데 공의 휘는 병규(昞圭)요 자는 복여(復汝)니  
-로 가다가 풍랑을 한다 표류되어 신라시대 기성(箕城: 지금 평해)에 표착하여 비로 +호(自號)를 학초(鶴樵)라 하였다.\\
-소 동국에 들어왔는데 고려팽해차 금오공(金吾公) 온인(溫仁)이 본관(本貫)을 얻은 +
-할아버지시다. 四대를 전하여 휘용(墉)은 우리가 평해(平海)를 본관을 한 이후로 백 +
-(伯)중(仲)체(季)도파 증체피(季派)의 파조(派祖)이니 벼슬이 삼중대광보극으로+
  
-시호(詩號)는 충경(忠敬)이요 三대를 전여 휘천계(天繼)의 호는 잠재(潛齋)니 삼 +\_오직 우리 황가(黃家)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중국(中國하를 근원으로 한(漢)나라  
-도관찰사(三道觀察使)다.八대를 전하여 휘 (漢)의 호는 취적헌(取適軒)이니 +건무(신라(新羅(儒理王5()년 기 28(二十八)년) 때 유신 휘 ()이  
-경서와 사기를 널리 섭독하여 문학과 행검이 타인의 모범이 되셨다. +교지에 사신(使臣)으로 가가 풍랑을 만나 표류되어 신라시대 기성(箕城)(: 지금 평해)에  
-고조(高祖)의 휘는 태진(泰鎭)인데 호는 락서(洛西)요 증조의 는 오원(五源)인데 +표착하여 비로소 동국에 들어왔데 고려 때 태자 금오공(金吾公인(溫仁)이 본관(本貫)을 얻은 
-호는 운파(雲破)며 통정(通政).조의 휘는 종철(宗哲)인데 호는 서산재(西山齋) +할아버지시다. 4()대를 전하여 휘 용(𤨭)은 우가 평해(平海)를 본관을 한 이후로  
-참봉(參奉)이다.고의 휘는 성구(成九)인데 종사랑(從仕郎)이고 비(妃)는 유인(儒人+()()(3()파 중 계피(季派)의 파(派祖)이니 벼슬이 삼중광보극으
-안동권씨(安東權氏) 사인 명진(明鎮)의 따님이다. +
-경자(庚子:一九○○)년 +월 二十七일에 공이 목현(木峴옛집에서 태어났으며 +
-어릴때부터 총명이 동류에 뛰어났으며 취학함에 문득 글자뜻을 밝게 분별하고 사 +
-를 잠자코 연구하였다. 이로부터 후일에 뜻을 가다듬고 성의를 다했기에 혜택이 후 +
-손에게 미쳤으니 이는 성현의 학문을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니 진실로 일상생활이 +
-착한 사람인데 선()을 행한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을까? 오직 취 +
-적헌공(取適軒公)의 착한 후손 학초공(鶴樵公)이 또한 그런 분이다. 더불어 고을 사 +
-(士林에 태어나시어 법에 따르고 본받을 것이 선()으로 나아가고 사사로 +
-운 괴로움을 막으며 선세를 찬양하고 후손에게 알려주는 일에 거듭 감동되어 사모 +
-하는 것은 선의 업에 성의를 다함라. +
-그러나 대대로 전해오는 선조의 세업에 징빙할 곳 없고 문증에 의뢰할 곳도 없기+
  
-에 맨손으로 헛되게 생각하기를 여러해에 사모해 오던 빈터를 말로만 취적선조(取 +시호(詩號)는 충경(忠敬)이요 3()대를 전하여 휘 천계(天繼)의 호는 잠재(潛齋)니  
-適先祖)의 정각이 절실하다 하면서 아직까지도 없음을 혼자서 한탄하나니 효제의 +관찰사(三道觀察使)다. 8()대를 하여 휘 한성(漢成)의 호는 취적헌(取適軒)이니 
-생각이 독실함은 천성인지라 삼종숙 윤구와 더불어 주의하고 서로 힘을 도와서 쇠 +경서와 사기를 널리 섭독하여 과 행검이 타인의 모범이 되셨.\\
-잔한 문중을 개혁하려는 결정이니 우리 족인들이 목현(木峴)에 정거한지 미 三百 +
-여년이란 오랜세월이 지났으나 문중에 유집을 간행한 일이 없고 마을에 누대에 걸 +
-쳐 정각도 없으니 우리 족인들의 규범에 커다란 허물이 아닐 수 없다. 기운이 피곤 +
-하고 힘이 쇠잔하나 가장 먼저 해야 할 결이라 하면서 경영한 일은 진실로 옛사 +
-람 완씨(阮氏숙질(阮籍과 족하 阮咸)과 같은 훌륭함이 아니겠는가? +
-이에 풍수를 보여 정자로서 좋은 터를 택하고 문내(門內)의 수사 몽구씨(夢九氏+
-와 봉기씨(鳳起氏)가 성금을 많이 내어 춘궁기에도 불구하고 자금이 넉넉하였으며 +
-수년만에 공가 끝났으니 덩교렇고 경치가 아름다워서 목현(木峴)마을 촌양이 바 +
-뀌어진 것 같도다. 다음 유집을 간행하기 위하여 경향 각지 여러대방가를 찾아다니 +
-며 문자를 얻어오자니 마음이 초조하고 고달픈 기상이 어떠하리요. +
-병일(昞洙제종은 거대한 축대를 쌓느라 손이 터지고 발을 다치는 고통을 무릅쓰 +
-고 완공함은 충조이념이 남다름을 가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으랴. 그리하여 응기(應 +
-)와 병운(昞雲이 발의하여 학초공(鶴樵公)의 공을 후손에게 영세토록 남기기 +
-위하여 돌을 듬어 세우기로 합의하여 그 사유를 기록하려 하니 내가 어찌 용렬한+
  
 +\_고조(高祖)의 휘는 태진(泰鎭)인데 호는 낙서(洛西)요 증조의 휘는 오원(五源)인데
 +호는 운파(雲破)며 통정(通政)이다. 조의 휘는 종철(宗哲)인데 호는 서산재(西山齋)요
 +참봉(參奉)이다. 고의 휘는 성구(成九)인데 종사랑(從仕郎)이고 비(妣)는 유인(儒人)
 +안동권씨(安東權氏) 사인 명진(明鎭)의 따님이다.\\
  
-사람으로 말할 수 있+\_경자(庚子)(: 1900(一九○○))년 10(十)월 27(二十七)일에 공이 목현(木峴) 옛집에서 태어났며 
-후일 문중이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이다. +어릴 때부터 총명이 동류에 뛰어났으며 취학함에 문득 글자 뜻을 밝게 분별하고 사리를  
-志士 葛隱 平海黃公昞允之墓 +잠자코 연구하였다. 이부터 후일에 뜻을 가다듬고 성의를 다했기에 혜택이  
-一九五년 (己亥三월 청명절에 +후손에게 미쳤니 이는 성현의 학문을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니 진실로 일상생활이 
-종후인 섭 삼가 기록.+착한 사람인데 선(善)을 행한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을까? 오직  
 +취적헌공(取適軒公)의 착한 후손 학초공(鶴樵公)이 또한 그런 분이다더불어 고을  
 +사림(士林) 총중에 태어나시어 법에 따르고 본받을 것이 선(善)으로 나아가고 사사로운  
 +괴로움을 막으며 선세를 찬양하고 손에게 알려주는 에 거듭 감동되어 사모하는  
 +것은 선조의 업에 성의를 다함이라.\\ 
 + 
 +\_그러나 대대로 전해오는 선조의 세업에 징빙할 곳 없고 문중에 의뢰할 곳도 없기에  
 +맨손으로 헛되게 생각하기를 여러 해에 사모해 오던 빈터를 말로만 취적선조(取適先祖)의  
 +정각이 절실다 하면서 아직까지도 없음을 혼자서 한탄하나니 효제의 
 +생각이 독실함은 천성인지라 삼종숙 윤구와 더불어 주의하고 서로 힘을 도와서 쇠잔한  
 +문중을 개혁하려는 결정니 우리 족인들이 목현(木峴)에 정거한지 이미 3백(三百)여년이란  
 +오랜 세월이 지났으나 문중에 유집을 간행한 일이 없고 마을에 누대에 걸쳐  
 +정각도 없으니 우리 족인들의 규범에 커다란 허물이 아닐 수 없다. 기운이 피곤하고  
 +힘이 쇠잔하나 가장 먼저 해야 할 요결이라 하면서 경영한 일은 진실로 옛사람  
 +완씨(阮氏) 숙질(: 완적(阮籍)과 조카 완함(阮咸))과 같은 훌륭함이 아니겠는가?\\ 
 + 
 +\_이에 풍수를 보여 정자로서 좋은 터를 택하고 문내(門內)의 수사 몽구(夢)씨와  
 +기(鳳起)씨가 성금을 많이 내어 춘궁기도 불구하고 자금이 넉넉하였으며 
 +수년만에 공사가 끝났으니 덩그렇고 경치가 아름다워서 목현(木峴)마을 촌양이  
 +바뀌어진 것 같도다. 다음 유집을 간행하기 위하여 경향 각지 여러 대방가를 찾아다니며  
 +문자를 얻어오자니 마음이 초조하고 고달픈 기상이 어떠하리요.\\ 
 + 
 +\_병일(昞泆) 제은 거대한 축대를 쌓느라 손이 터지고 발을 다치는 고통을 무릅쓰고  
 +완공함은 숭조이념이 남다름을 가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으랴. 그리하여 응기(應起)와  
 +병운(昞雲) 등이 발의하여 학초공(鶴樵公)의 공을 손에게 영토록 남기기 
 +위하여 돌을 다듬어 세우기로 합의하여 그 사유를 기록하려 하니 내가 어찌 용렬한 
 +사람으로 말할 수 있으랴.\\
  
 +\_후일 문중이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_\_1995(一九九五)년 기해(己亥) 3(三)월 청명절에\\
 +\_\_종후인 세섭 삼가 기록함.
 +</typo>
 +</WRAP>
c32-035.1749290027.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6/07 18:53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