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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2-036 [2025/06/07 18:56] – 만듦 ssio2c32-036 [2025/06/08 20:31] (현재) ssi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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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志士 葛隱 平海黃公昞允之墓+===志士 葛隱 平海黃公昞允之墓=== 
 +<WRAP 37em justify> 
 +<typo ff:'한양해서'; fs:1.2em; lh:1.5em> 
 +\_**지사(志士) 갈은(葛隱) 평해황공(平海黃公) 병윤(昞允) 지묘(之墓)**\\ 
 +\_여기 고상(古上) 능근곡(能根谷) 일우(一隅)에 지사(志士)가 잠드셨으니 곧  
 +평해인(平海人) 휘 병윤(昞允) 자 윤중(允中) 호 갈은(葛隱)이다. 시조 휘 낙(洛) 중국(中國)  
 +한조(漢朝) 학사공(學士公)이 평해(平海)에 표착(漂着)하였으며, 29(二十九)대조 휘  
 +온인(溫仁) 고려 금오장군(金吾將軍) 태자검교(太子檢校)공이고, 26(二十六)대조 휘 용(𤨭) 
 +고려 삼중대광(三重大匡) 시(諡) 충경공(忠敬公)이며, 22(二十二)대조 휘 천계(天繼)  
 +경기(京畿) 전라(全羅) 경상(慶尙) 삼도관찰사(三道觀察使)이고, 14(十四)대조 휘 귀성(貴成)  
 +임진란시(壬辰亂時) 왜적(倭敵)을 대파(大破)한 선무공신(宣武功臣) 정략장군(定略將軍) 
 +호 만휴당(晩休堂)이며, 납시곡(納是谷) 입향(入鄉) 8(대)조 휘 세업(世業)  
 +사헌부집의(司憲府執儀)이고, 5(五)대조 휘 복하(復河) 증 통정(通政)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  
 +겸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이며, 고조 휘 종극(鍾極) 증 가선(嘉善) 이조참판(吏曹參判) , 
 +증조 휘 경주(景宙) 수승(壽陞) 통정(通政)공이고, 조 휘 여동(麗東), 고 휘 척구([王石]九),  
 +비(妣)는 안동권씨(安東權氏) 정묵(正默) 여(女)이다.\\
  
 +\_공은 광무(光武) 7(七)년 1903(一九〇三)년 계묘(癸卯) 5(五)월 25(二十五)일 백자봉(栢
 +子峯) 하흠실리(下欽室里) 제(第) 출신으로 성장시 부터 용모단정(容貌端正)하고 
 +재기과인(才器過人)한데 일찍이 공주(公州) 이공(李公) 호익(浩翼) 문하생으로 경전자사(經傳子史)를 
 +섭렵하고 향리 호남학원(湖南學院)에서 신문화(新文化)를 연학(硏學)하여 문사(文詞)에 
 +조예(造詣)가 깊고 서예(書藝)에 천명(擅名)하였다.\\
  
-여기 고상능근곡(古上能根谷일우(一隅)에 (志士)가 잠드셨니 곧 평해인(平 +\_선세지훈(先世之訓)을 받아 봉선치효(奉先致孝)하고 휼빈시혜(恤貧施惠之情)이었나  
-海人) 휘 병윤(昞允) 자 윤중(允中) 호 같(葛隱)이다. 시조 휘락(중국(中國 +한말(韓末국력이 약해지자 침략 일본은 을사(乙巳條約경술합방(庚戌合邦)  
-(漢朝학사공(學士公)이 평해(平海)에 표착(漂着)하였으며 二十九대조 휘 온인(溫 +등이 늑약(勒約)되어 아민족(我民族)은 왜적(倭賊)에게 유린(蹂躪)매  
-仁) 고려 금오장군(金吾將軍태자검교공(太子檢校公)이고 二十六대조 휘용()고 +애국지사들은 국내외로 흩어져 항일독립운동(抗日獨立運動)을 전개할 때 공 역시  
-려 삼대광(三重大匡(충경공(忠敬公)이며 二十二대조 휘 천계(天繼경기(京 +조국광복(祖國光復)의 웅지(雄志)를 품고 기회를 기다리는 중 1927(一九二七)년 겨울에  
-전나(全羅경상(慶尙삼도관찰사(三道觀察使)이고 十四대조 휘 귀성(貴成임진 +김연한(金璉漢황세중(黃世中) 이회직(李會稙권병남(權丙南김명한(金命漢 
-난시(壬辰亂時왜적(倭敵)을 대파(大破)한 선무공신(宣武功臣) 정략장군(定略將軍+황호중(黃浩中(金朝漢김석동(金石東권오인(權五寅등 여러 인사와 더불어  
-호 만휴당(晚休堂)이며 시곡(納是谷입향(入鄉八대조 휘 세업(世業) 사헌부집의 +신간회(新幹會안동지부(安東支部)를 결성하고 민족(民族正氣)를 고취(鼓吹)하다가  
-(司憲府執儀公)이고 五대조 휘 복하(復河증 통정승정원좌승지(通政承政院左承 +1930(一九三〇)년 부터는 호학우(湖南學友)들과 청년회(靑年會)를 직하고 후진들에게  
-겸 연참찬관(經筵參贊官)이며 고조 휘 종극(鍾極증 선이조참판(嘉善吏曹參 +민족문화(民族文化)와 자주독립정신(自主獨立精神)을 교도(敎導)하여 일경(日警)에게 무수한 
-증조휘 경인(寅) 수승통정공(壽陞通政公)이고 휘 여동(麗東) 고휘 척구(+질곡(桎梏)을 받다가 오호(嗚呼)라 1938(一九三八)년 무인(寅) 7()월 27(二十七)일  
 +국광복(祖國光復)을 못 본체 (考終)하다.\\
  
-()는 안동씨(安東氏) 정묵(正默) 여(女)이다. +\_묘는 능근곡(能根谷자좌지원(子坐之原)이요 배(配) 안동씨(安東氏) 무진(武鎮) 
-( +여(女)는 윤합곤순지도(允合坤順之道)를 닦더니 1994(一九九四)년 (陰) 2(二)월 24(二十四)일  
-공은 광무(光武七년 一九〇三년 계묘(癸卯월 二十일 백자봉하흠실리제(栢 +영면(永眠)하니 묘(동원(同原쌍분(雙墳)이다. 정수(庭樹)는 2()남 1()녀인데 장남  
-子峯下欽室里第) 출신으로 성장시 부터 용모단정(容貌端正)하고 재기과인(才器過人) +석기(錫起)는 재일교포권익보호(在日僑胞權益保護)의 공()으로 주일대사(駐日大使)와  
-한데 일찍이 공주이공호익(公州李公浩翼문하생으로 경전차사(經傳子史)를 섭렵하 +최규하(崔圭夏외무장관의 포상(褒賞)이 서수(敍受)고 차남 학기(鶴起)는  
-고 향리 호남학원(湖南學院)에서 신문화(新文化)를 연학(研學)하여 문사(文詞)에 조 +위선(爲先事業)과 목사교(社交)에 돈독(敦篤)하여 정린(井隣之人)의 칭송(稱頌)이  
-(造詣)가 깊고 서예(書藝)에 천명(擅名)하였다 +높으며 여는 달성서씨(達城徐氏진수(珍洙)이다. 석기(錫起)의 은 현욱(鉉旭)이고,  
-선세지훈(先世之訓)을 받아 봉선치효(奉先致孝)하고 훌빈시혜지정(恤貧施惠之情) +현욱(鉉旭)의 남은 상경(相慶)이며 학기(鶴起)의 은 현찬(鉉贊현익(鉉翼
-으나 한말(韓末극력이 약해지자 침략일본은 을조약(乙巳條約경술합방(庚 +현재(鉉載현부(鉉扶현우(鉉佑)이고 이하 다 기록하지 못한다.\\
-戌合邦) 등이 늑약(勒約)되어 아민족(我民)은 왜적(倭賊)에게 유린(蹂躪)매 애 +
-사들은 국내외로 흩어져 항일독립운동(抗日獨立運動)을 전개할때 공 역시 조국 +
-광복(祖國光復)의 웅지(雄志)를 품고 기회를 기다리는 중 一九二七년 겨울에 김연한 +
-(金璉漢황세증(黃世中) 이회직(李會稙권병남(權丙南김명한(金命漢) 황호중(黃浩 +
-中) 김조한(金朝漢김석동(金石東권오인(權五寅) 여러 인사와 더불어 신간회안동 +
-지부(新幹會安東支部)를 결성하고 민족정기(民族正氣)를 고취(鼓吹)하다가 一九三〇 +
-년 부터는 호학우(湖南學友)들과 청년회(青年會)를 조직하고 후진들에게 민족문화 +
-(民族文化)와 자주독립정신(自主獨立精神)을 교도(教導)하여 일경(日警)에게 무수 +
-질곡(桎梏)을 받와 오호(嗚呼)라 一九三八년 무인(戊寅) 七월 二十七일 조극광복+
  
-(祖國光復)을 못본체 고종(考終)하다. +\_오늘도 송모계술(誦慕繼述)한 유잉(儒仍)은 공의 유풍여운(遺風餘韻) 속에  
-묘는 능근곡자좌지원(能根谷子坐之原)이요 배(配) 안동김씨(安東金氏) 무진(武鎮) +일익번연(日益繁衍)되고 있다. 어느날 석기(錫起) 학기(鶴起)보가 개갈지성(改碣之誠)으로
-여(女)는 윤합곤순지도(允合坤順之道)를 닦더니 一九九四년 음(陰) 二월 二十四일 영 +
-면(永眠)하니 묘동원쌍분(墓同原雙墳)이다.정수(庭樹) 二남 -녀인데 장남 석기(錫 +
-起)는 재일교포권익보호지공(在日僑胞權益保護之功)으로 주일대사(駐日大使)와 최 +
-규하(崔圭夏) 외무장관의 포상(褒賞)이 서수(叙受)되었고 차남 학기(鶴起)는 위선사 +
-업(為先事業)과 목족사교(睦族社交)에 돈독(敦篤)하여 정린지인(井勝之人)의 칭송(稱 +
-頌)이 높으며 여는 달성서씨(達城徐氏) 진수(珍洙)이다. 석기(錫起)의 남은 현우(鉉 +
-旭)이고, 현욱(鉉旭)의 남은 상경(相慶)이며 학기(鶴起)의 남은 현찬(鉉贊) 현익(鉉翼) +
-현재(鉉載) 현부(鉉扶) 현우(鉉佑)이고 이하 다 기록하지 못한다. +
-오늘도 송모계술(誦慕繼述)한 유잉(儒仍)은 공의 유풍여운(遺風餘韻) 속에 일익번 +
-연(日益繁衍)되고 있다. 어느날 석기(錫起) 학기(鶴起)보가 개갈지성(改碣之誠)으로+
 나에게 비문(碑文)을 청(請)함으로 부덕천문(不德淺文)으로 지었으나 지사(志士)의 나에게 비문(碑文)을 청(請)함으로 부덕천문(不德淺文)으로 지었으나 지사(志士)의
 우국정신(憂國精神)과 그 업적(業績)이 금후백세(今後百歲) 날이 갈수록 빛나길 바랄 우국정신(憂國精神)과 그 업적(業績)이 금후백세(今後百歲) 날이 갈수록 빛나길 바랄
-뿐이다. +뿐이다.\\ 
-檀紀 四三二五년 月일 +\_\_단기(檀紀) 4325(四三二五)년 월((日)\\ 
-獨立志士紀念事業會 代表 安東 金乙東謹撰 +\_\_독립지사기념사업회(獨立志士紀念事業會) 대표(代表) 안동(安東) 김을동(金乙東) 근찬(謹撰) 
 +</ty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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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2-036.1749290174.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6/07 18:56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