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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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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보서(庚辰譜序) (1880년)

凡人本乎祖猶木之根水之源也木自根而達平枝水由源而治乎派矣况人 豈有本而不究苗也有後而不明其先乎是以士之有譜所以明先系之何自 而某為某祖也譜之有序所以究後承之何由而誰為誰孫也吾姓之貫箕而 著國與我東之名家世族其德業風節非無駢美匝輝而累經兵燹譜乘之莫 傳固其宜也以錦海兩先生之博聞草輯而未詳傳疑繼有南塘公所序之譜 各藏未刊者久矣粵 庚寅錦翁之胃孫山倍伯仲公與吾慕古窩曾大父教設 譜所干豐之錦陽互證胥校辨訛質疑壽其傳而成其完錢出二卷則其述先 貽後之功果何如而其後辛卯壽春承旨令宗更修譜于洛之華寺輪通諸邑 活印六冊而以長派之不應為欠矣去庚戌秋山南之嗣孫憲周氏先告各邑 與遠邇諸宗合謀並力綴其貴而正其謬古之漢學士今據信蹟而改以唐朝 則其真鷹之顯晦亦有時而然以力綿而僅成三卷猶未免率漏之歎各思有 八路會同之意矣廼者豐宗範鱗宇鎮甫主幹其事每恨前譜之不廣定有司 輪告于各道遠邑且遣貫邑愈往勤督積有年所而間值歲歉自至坦培延拖 矣今夏始與族從濤及瀞偕到則各處僉宗長湍禮浩慶州應極平海在淵江

陵炳清安弼欽己齊會而設役矣共閱幾朔參互勘檢遂成幾卷印得若干秩 昔之未詳今得益詳後之傳疑先破其疑派系之多模昭穆之易失瞭然於開 卷寓目之間有苦祖考儼臨雲仍傍列推之一本如枝之連根派之溯源雖世 曠地遐之宗悦然合堂同席獲識講敦孝油然生風以之厚不讓蘇程之譜則 庶不員今日收族作譜之意而告說之夕譜廳之會宗以吾海月先祖卷弁有 序且參掌幹之任不可無一言遂不敢辭而略叙顛末庸附于左 崇禎後五庚辰端陽節後裔孫冕九謹序 무릇 사람이 祖上을 根本으로 하는 것이 나무의 뿌리와 물의 根源과 同一한 것 이다. 나무는 뿌리로부터 가지에 달하며 물은 根源으로부터 支流에 이르나니 라. 하물며 사람이 어찌 根本이 있는데 그 싹을 생각지 않겠으며 後世가 있 는데 그 先世를 밝히지 않겠는가 이것이 士族之家에 族譜를 두게 되는 所以이며 또 族譜는 先系가 어디로부터 왔으며 누가 누구의 祖上이 됨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族譜의 序文이 있는 所以는 後承이 어디로 말미암아 누가누구의 子孫이 됨을 알게하는 것이다.

우리 姓이 本貫을 平海로한 後에 우리나라 名家世族들과 함께 그 德業風節이 아름다움을 자지런히 하여 두루 빛남이 없지 않았느냐 여러차례 兵火를 겪어 譜牒을 燒失하고 傳치 못하였으니 이는 大同之患에 있음직한 일이나 吾宗의 不 幸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로 말미암아 錦海兩先生의 博識多聞으로 이루어진 草輯마져 仔細하지 못하여 疑問으로 傳하였으며 이어 南塘公草譜도 發刊하지 못함이 오래더니 지난 庚寅年에 錦溪公의 胃孫山梧伯仲公이 나의 曾 大父慕古窩와 함께 譜所를 豊基錦陽에 設置하고 서로 證據를 들어 校正하되 그 릇된 곳을 辨證하고 疑心나는 곳을 質問하여 오래도록이 譜冊이 傳해지기를 祈 願하면서 完功을 이루어 두 卷을 새겨 出版한 것인즉 그 先代의 뜻을 받어 이 었고 後世에 물려주는 功이 果然무엇으로 비할고? 그 後 辛卯年에 春川 宗承 旨燾氏가 서울 華藏寺에 譜廳을 設置하고 修譜하여 六卷을 活版으로 印刷하였으나 長派豊基의 不應이 흠이였었다. 그리고 지난 庚戌年 가을에 山南의 嗣孫憲周氏가 먼저 各邑에 通告하고 遠近諸宗들과 合謀並力하여 그 빠진 곳을 깁고 그릇된 곳을 바로 잡아 옛날 漢學士를 信蹟에 依據하여 唐나라로 고친것인즉 그 옳은 것이라도 밝아지고 안 밝아지는 것은 또 한때가 있는 法이니라. 그것은 그렇다 손치더라도 힘 不足으로 겨우 譜冊을 三卷밖에 完成치 못하였다는 것은 後日에 輕率하게 漏落시킨 한탄을 免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八道의 宗人들이

62페이지 모여 합의 협력한 결과인데 장차 어찌할 것이리요? 이제 庚辰修譜는 豊基宗人範麟宇鎮 두 사람이 주간이 되여 매양 지난번 譜牒이 넓게 수합되지 못하였음을 한탄하면서 유히를 정하여 각도원읍에 두루 통고하고 또 평해에는 사람을 보내어 부지런히 督勵하였으나 수년간을 요하였다. 이것은 지방에 흉년이 들어 모든 일이 뜻과 같이 이루어지지 못함이였다. 비로소 금년여름으로 족종濤와 瀞으로 더불어 함께 錦陽에 이르른즉 장단의 禮浩慶州의 應極평해의 在淵강릉의 炳清안의 弼欽등 각읍제씨가 이미 모여 設役을 하고 있는지라 함께 수개월을 더 격은 후에 서로 勘檢하여 드디어 몇 권을 완성하고 여러 帙을 인쇄하였으니 옛날의 상세치 못한 것을 이제 더욱 자세하게 다듬었으며 후세에 의심으로 전한 것을 먼저 깨우쳐 그 의심을 풀었노라。 그리고 파계에 모호함이 많은 것과 昭穆항열에 분간키 곤란한 점을 발루었음으로 譜冊을 한번 열어 살펴볼 때 조상이 엄연히 오신 것 같으며 자손이 곁에 벌려서 있는 것 같음을 느끼리라. 다시 한번 추상할 때 한 줄기의 가지가 뿌리에 연한 것과 같으니 비록 세대가 멀고 동서남북으로 떠러져 있는 종친들이라 기할지라도 합당동석하여 돈睦과 효제를 강론하며 유연한 풍속을 진작시키는 같음이 있어 상호 돈후한 정이 생기는 것같도다. 이러니 어찌 蘇氏와 程氏의 족보에 사양 하겠는가 무릇 제종은 오늘날 수족작보의 뜻을 저버리지 말도록 효제충신의 도를

힘쓸지로다. 譜事를 終了하는 밤에 譜廳에 모인 宗親들이 우리 海月先祖序文도 卷頭에 있고 또한 掌幹의 所任도 맡은 수림이니 一흠이 없어서는 안되지 않겠느냐 함로 蕪辭를 무릅쓰고 두어줄 顛末을 記錄하여 譜冊말미에 부치노라。 崇禎後五庚辰端陽節後裔孫冕九謹序

b-007.1748063255.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24 14:07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