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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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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보서(庚辰譜序)

譜序는 원래 中國의 學者歐陽修와 蘇軾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有族이면 有譜요 有譜면 有序니 곧 序는 譜의 顛末을 서술한 것이다. 우리 黃氏가 東方에서 가장 오래되고 또 먼 歷史를 가진 著名한 氏族인데도 홀로 譜와 序가 없어서 宗人들이 몇代를 두고 이것을 크게 恨歎해왔었다. 따라서 錦溪海月 두분 先生의 博學 多聞으로서도 未詳疑傳之歎이라고 하여 우리 黃氏의 世系와 事蹟이 未詳함을 다같이 歎息하면서 다만 草譜와 遺序를 남겨 놓았을 뿐이였다. 各派의 派系와 各家의 譜牒이 많은 訛博과 誤差가 있었던 것은 여러차레의 兵亂과 火災를 격은 까닭이며 우리 三派가 各處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또 文籍의 韜晦顯發은 비단 氣數所關일뿐만 아니라 時運의 致來에도 緣由한 것이다. 이로서 英廟庚寅에 이르러 大譜가 이루어졌으니 진실로 윗代의 오랜 宿願을 成就시킨 거창한 事業이었다. 그 當時先父老의 苦心과 勤幹이 비록이 譜冊에는 나타나지 않았으나 宗族子姓의 可히 儀法이 될 만한 것이었다. 嗚呼라 百餘年이 지난 後라도 마땅히 勿替之訓을 지킬일이어늘 後世사람들이 古法을 직히지 아니하고 各派의 派譜는 間間있다고는 하난 三派合譜는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니 이 어찌 先人들의 遺志를 받들어 모시고 宗族들에게 두려운 사랑을 베풀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때때로 舊譜를 받들어 보고 크게 感歎함을 마지 않았더니 乙亥年 봄에 豊基錦陽에서 通文이 와 合同族譜하자하니 豊基宗人은

三派中의 長派이요 錦舎는 最初의 譜所이니 이곳에서 發論하고 이곳에 譜所를 設置함이 마땅한 일이나 즉각 贊意를 回答하지 못하였음은 나의 生計가 困窮한 데다가 늙고 외로운 形便에 距離가 三百餘里나 됨으로 抽身之計가 어려웠고 또 譜事를 主幹할 만한 재목이 못되는 데다 공교롭게도 丙子年은 큰 凶年을 만났 음으로 數年間을 망서리고 있던 중 끝내는 譜廳에서의 부름이 再三再四라 더 以上眾意를 外面할 수 없어 戊寅年에 族姪來源과 함께 譜所에 이르니 各處諸宗이 다 모여서 勤勞周旋했는데 훌륭한 분들이 참으로 많았었다. 나는 잠시 피로한 다리를 쉬고 譜所의 樓閣을 우러러보매 舊譜의 版木이 保存되어 있어 敬虔한 마음으로 어루만져보니 百年前先父老의 祖先을 위한 마음씨와 後孫들을 保護하는 뜻이 赫赫하여 어젯날 같이 느꼈었다. 나는 그로부터 해마다 한번씩 여기에와서 始終參與하고 謀事圖成하였으나 비록 큰 잘못은 없었드라도 별로 크게 한일 도 없었다. 드디어 庚辰年 가을에 譜事가 끝나게 됨에 序文이나 跋文記錄은 宗中의 高手들이 많으니 나같은 淺見非才敢히 容喙가할바 못되나 宗中의 公論이 우리 三派子孫이 各各 분담한 任務가 다 있었는데 그대만이 유독히 그대로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기에 내가 이 序文을 지어 두어줄 글로써 많은 사람들의 책망을 덜고 저한다 世譜의 續刊을 中斷하는 일이 없도록 다만 勿替 두글자로써 諸宗에게 勸勉할 따름이다. 庚辰 九月 秋後裔孫弼欽謹序

b-017.1748066789.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24 15:06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