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도구

사이트 도구


b-083

문서의 이전 판입니다!


황수범배유인옥천김씨묘갈명(黃壽範配孺人沃川金氏墓碣銘)

墓碣銘 憲宗八年辛丑榮川士人黃壽範配孺人沃川金氏殉其夫同日死之鄕里歎 曰烈婦也同穴而葬郡南汾浦里泉谷坐良原後百三十年伐石表墓道宣城 金承學摭其事而爲之銘曰烈婦全姓厥籍管城遠祖休溪自靖家榮綿綿十 世有諱重諶是取某氏克諧瑟乃生烈婦幼己端莊十四言笄載歸于黃黃系 箕城大海之裔日諱壽範爲賢夫婿媲德宣家溫柔婦德方膺天祉有雍鳧藻 胡爲夫子猝道劇疾須臾命盡救起無術烈婦一慟更着嫁衣就依屍傍氣絶 井歸遠通驚嗟曰如其烈飲同其日同穴而均噫彼效烈世多其倫或以矣志 或以潔身每遇疾風幽闌播馥晏晏殉從全氏所獨時當晟世風勵倫綱卓矣 所辨宣在褒揚無有啟達未蒙蒙旋典淸漸邈海劫屡變霜日貞節聲響况泯 化者何預世道之隕爰有子女男爲浩淵一女適人曰永嘉權相俊相杰以及 相福次弟三孫餘煩不錄惟曾孫春氣舜其児實是世嫡始璨斯碑誰袖張狀 謁以顯銘惟其左右亦有世明煌煌棹楔雖不門間阡塗璀斷可堪特書爲擧 大者餘不暇詳石久或磨烈永流芳 宣城金承學謹撰

묘갈명(墓碣銘) 서문과 함께 墓碣銘 헌종(憲宗) 八년(서기 一八四二) 신축에 영주(榮州)의 선비 황수범(黃壽範)의 배위(配位)인 유인(孺人) 옥천전씨(沃川全氏)가 그 남편이 죽은 날에 자진 (自盡)해 죽어 향중 마을 사람들이 열부(烈婦)라고 말하고 같은 묘혈(墓血)에 합장(合葬)하였으니 군(郡)의 남쪽 분포리(汾浦里)의 샘골 간좌(艮坐)의 둔덕 이다. 그 후 一百三十년이 지나서 돌을 다음어 묘비(墓碑)를 세우는데 선성(宣城) 김 승학(金承學)이 그 사실을 모아 묘갈명(墓碣銘)을 말하노니 열부(烈婦)의 성 씨(姓氏)는 전씨(全氏)이며 그이 본관(本貫)은 옥천(沃川)이었다. 휴계공(休溪公)이 먼 조상인데 난세(亂世)를 피하여 영주에 살았다. 연면(連綿)하게 십세(十世)를 이어내려서 중심(重諶)이란 휘(諱)를 가진 분이 있었다. 이분이 모씨(某氏)에게 장가들어서 부부(夫婦)의 금실(琴瑟)이 극히 좋았다. 그러한 가운데 열부(烈婦)를 낳으니 어려서부터 단정하고 장중(莊重)했었다. 열네살에 혼인말이 오고 가다가 황씨(黃氏)의 가문에 신행(新行)들었다. 황씨의 세계(世系)는 평행(平海)가 관향이며 대해공(大海公)의 후예손이 되는 집이다.

남편의 휘(諱)는 수범(壽範)이었으며 어진 남편 어진 사위가 되었었도다 덕(德)있는 가문(家門)에 짝이 되어서 온유(溫柔)하게 부도(婦道)를 지켜나갔다 바야흐로 천복(天福)을 누리어 가며 물오리처럼 다정하게 살아가더니 어찌하여 부군(夫君)이 잘못되어서 갑자기 몹쓸 병에 걸리었는가 몇날이 안 되어 명(命)을 다하니 살려낼 방술(方術)이 도무지 없네 열부(烈婦)가 한번 크게 통곡한 뒤에 시집 올 때 입던 옷 다시 입고서 남편의 시신(屍身) 곁에 다가누워서 기절(氣絶)하여 남편 따라 죽어갔었네 원근에 사는 사람 놀라고 탁식하며 그것은 열부(烈婦)라고 입을 모았네 그 날에 부부(夫婦)함께 염(斂)을 마치고 한 무덤에 합폄(合室)으로 장사지냈네 아! 열부(烈婦)를 본받아 행한 사람들 세상에는 그런 무리 많기도 하여 혹은 뜻으로만 열부가 되기도 하고 혹은 그 순결(純潔)을 지켜나가도 매양 질풍(疾 風)같은 때를 만나면 그윽한 난초(蘭草)처럼 향기 피우지만 화평한 마음으로 따라 죽은 사람은 전씨(全氏)만이 그 일을 홀로 해냈다. 태평한 성세(盛世)를 만났더라면 윤강(倫綱)을 장려하는 교회(敎化)로 삼아 그가 단행(斷行)한 높은 정절(貞節)은 마땅히 포양(褒揚)함이 있을 것이나 상달(上 達)하여 아뢰올 길이 없어서 정려(旌閭)의 은전(恩典)을 입지 못했다. 국운(國運)이 돌아올 희망 점점 멀어져 상전(桑田)이 벽해(碧海)가 여러번 되

추상(秋霜)과 백일(白日)같은 그 정절도 소리의 울림이 없어져 가니 죽은 사람이야 어찌 관계 하랴만 세상의 정도(正道)가 떨어짐일세。 이 분들도 아들과 딸이 있으니 아들의 이름은 호연(浩淵)이었고 시집간 한 사람 딸이 있으니 안동권씨(安東權氏) 가문의 며느리 됐네。 상준(相俊)과 상걸(相杰)이 차례로 나고 그 다음의 이름은 상복(相福)이었다. 차례대로 손자가 세 사람 있고 나머지는 번거로와 기록 않는다. 오직 증손지(曾孫子)에 춘(春)이 있으며 기순(基舜)은 그 사람의 아들이온데 실제로 이 사람이 적사손(適嗣孫)으로 이 비(碑)를 비로소 다듬게 했다. 누가 있어 나에게 행장(行狀) 보내어 묘갈명(墓碣銘)을 지어 달라 청을 했는가。 오직 그들의 좌우(左右)에 있는 사람 또한 세명(世明)씨가 거기에 있다. 빛나는 정려문(旌閭門)이 내리어져서 비록 문 거리에 세우지는 못해도 무덤 길에 큰 비석 세워 놓으니 특서(特書)의 큰 글자를 실을 만 하네。 큰 줄거리만 들어서 비명(碑銘)을 하고 나머지는 자세하게 기록 못한다. 비석(碑石)은 오래되면 마멸(磨滅)될 수 있어도 열부(烈婦)의 꽃다운 이름 영 원하리라。 선성(宣城) 김승학(金承學) 삼가 짓다.

b-083.1748327425.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27 15:30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