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담황복령묘갈략(竹潭黃福齡墓碣略)
즉담 황복영 묘갈략
공의 휘는 복령(福齡)이요, 호는 죽담이니, 평해인이라.
문하찬성사 휘 천상(天祥)의 7세손이요, 고조의 휘는 기(岐)니
통훈대부 공조참의요, 증조의 휘는 도(道)니 한성판윤이요,
조의 휘는 이(頣)니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요, 선고의 휘는 중수(仲壽)니
주부요. 선비는 의인(宜人) 김(金)씨니, 김해대성 세침(世沉)의 여라,
부덕이 구비하여 6친의 칭송이 크더라.
만력 경술(庚戌)(1610)에 공이 달면리 제(第)에서 생하니,
어릴 때부터 영민하고 총명하여, 그 특이한 용모가 대인의 형상같더니,
장성함에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간에 우애함이 지극하고,
문장이 날로 성장하는 지라, 주부공이 과거 볼 공부를 힘쓰라 가르침에
공이 여쭙기를, 부귀하여 부모의 슬하를
떠나는 것 보다는 빈천하더라도 항상 모시고 있는 것이 더 기쁘다 하고,
원유도 하지 않고 잠시도 양친의 곁을 떠나지 않더라.
그래서 순지양체하는 범절이 옛날 문증(文曾)을 비길러라.
양친의 상사를 당해서 애통하기를 몸이 상할 정도로 하더니,
상복을 벗음에 개연히 지취를 높혀, 도를 구하고자 죽담 상에 일실을 지어,
소요 누색에 잠기고, 때로는 시를 읊으며 일산청풍에
청신한 운치가 있더니, 만년에 음관으로 통정 품계에 몽은 되었으나,
부임치 아니하고 천수를 마치니 유월의 제도로 장우 군서 이불당
임(壬)좌원에 안장하였다.
배위는 숙부인 손(孫)씨니 평해대성 충효(忠孝)의 여이라.
숙덕과 선행이 일찍부터 향린에
알려졌으며 집안의 말이 규방 밖으로 흐르는 일이 없고,
외정 출입을 하지 않은 지가 무려 40여년이 되더라.
진실로 세인의 모범이 되더니 공을 따라 세상을 떠남에 곧 합봉하였다.
2남을 두었으니 장왈 운서(雲瑞)이니 통정이요, 차왈 운일(雲逸)이니
계공랑이라.
오호라 공의 어진 마음과 두터운 덕이 넉넉히 자손들에게 미쳐서
후사가 번창하고 과환이 끊이지 아니하니
위선유경의 신조가 있음이라 하겠다.
명(銘)왈
仙臺之左 선대의 동쪽이오,
月岳之右 월악의 서편일새
居然泉石 세월이 흘러간 석천은
遺諸杖屨 장구만 남았으나
一心忠信 한마음으로 충과 신이 있고,
百行孝友 모든 행실은 효도와 우애였다.
惟志之尙 오직 지조가 높고
惟德之厚 덕망이 두터웠으니
克承先獲 능히 선대의 유업을 계승하고,
永垂後裕 후손에게 넉넉히 전하리로다.
謹銘于碣 삼가 비에 새겨,
敢圖不朽 오래도록 전하고저 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