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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054

의정공묘갈사(議政公墓碣寫)

議政公墓碣寫

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
行高麗國政憲大夫密直副使判圖判書黃諱天祿之墓


 지난 계사년(癸巳年)에 내가 관북(關北)의 안찰사(按察使)로 지방(地方) 순찰을 할 때, 영흥(永興) 땅에서 황종률(黃鍾律) 황희준(黃熹俊)의 어진 이름을 듣고, 예(禮)로써 맞이하니 그 용의(容儀)가 유아(儒雅)하고 언행(言行)이 충서(忠恕)함을 보고, 벌써 영지(靈芝)와 예천(醴泉)의 근원(根源)이 유래(有來)가 있음을 알겠더라. 도내(道內)의 고적을 고찰(考察)하다가 고원군(高原郡)에 황정승(黃政丞)의 묘(墓)가 있으되 실전(失傳)한지 이미 오래됨을 들었다. 황정승(黃政丞)은 고려(高麗)의 어진 재상(宰相)으로 희준(熹俊) 종률(鍾律)의 선조(先祖)가 되는지라. 내가 크게 감탄(感歎)한 바 있었더니, 세월(歲月)이 오랜 후에 희준(熹俊) 종률(鍾律) 두 사람이 지석(誌石)을 얻고 그 분영(墳塋)을 찾은 뒤에 비석(碑石)을 세우고자, 나에게 묘갈명(墓碣銘)을 청(請)하는지라. 지문(誌文)을 살펴보니 그 내용(內容)이 심히 희기(稀奇)한지라. 나의 학문(學文)이 부족(不足)하다 하여 사피(辭避)할 수 없는 고로 이에 이를 서술(敍述)하노라.
 공(公)의 휘(諱)는 천록(天祿)이니 평해인(平海人)이라. 황씨(黃氏)는 신라(新羅) 시대(時代)의 학사(學士) 휘(諱) 낙(洛)이라는 분을 처음 시조(始祖)로 삼으며, 고려조(高麗朝)에 이르러 휘(諱) 온인(溫仁)이 관(官) 검교(檢校)에 있었고, 그 후(後) 대대(代代)로 더욱 벼슬이 혁혁(赫赫)하여 3대(三代)를 전(傳)해 왔는데, 휘(諱) 용(𤨭)이라는 분이 삼중대광보국(三重大匡輔國)이요 시(諡)는 충경공(忠敬公)이,며 그 다음 대(代)가 휘(諱) 태백(太白)이니 형조전서(刑曹典書)요 아조(我朝)에 와서 우의정(右議政)을 증직(贈職)하였고, 또 그 다음 대(代)가 휘(諱) 우(祐) 병조전서(兵曹典書)니 아조(我朝)에서 증(贈) 좌의정(左議政)을 제수(除授)하였다. 즉 이분들이 공(公)의 증조(曾祖) 조(祖) 및 부(父)라.
 공(公)이 려말(麗末)에 벼슬하여 정헌대부(政憲大夫) 밀직부사(密直副使) 판도판서(版圖判書)에 이르고, 장자(長子) 희석(希碩)은 아(我) 태조(太朝)를 도와 개국훈(開國勳)에 책록(策錄)함으로써 공(公)에게 영의정(領議政)이 추증(追贈)되었다. 배우(配偶)는 광산(光山) 김씨(金氏) 습독(習讀) 돈(敦)의 여식(女息)이라. 묘소(墓所)가 고원군(高原郡) 군내면(郡內面) 신흥리(新興里) 갈고개(葛古介) 임좌지원(壬坐之原)이요, 중간(中間)에 실전(失護)되었다가 금하(今夏)에 비로소 다시 봉축(封築)을 하였으니, 슬프다 공(公)의 내외(內外)는 역양(歷敭) 즉 청환(淸宦)으로 오래도록 국가(國家)에 봉사(奉仕)하며 가유위적(嘉猷偉積) 좋은 정책(政策)과 큰 공훈(功勳)을 세웠음이 족(足)히 시속(時俗)을 바르게 하고 후대(後代)에 빛나야 할 것이어늘, 세기(世紀)가 너무 멀고 사기(史記)와 문적(文籍)이 궐실(闕失)한 것이 많고 삼척(三尺) 분영(墳塋)이 누차 병란(兵亂)과 화재(火災)에 피해를 당(當)하니, 가시덤불 속에 입몰(入沒)된지 많은 성상(星霜)을 지났도다. 진실로 영혼(靈魂)이 불매(不昧)하고 후예(後裔)의 진심갈성(盡心竭誠)이 아니었으면, 어찌 다시금 그믐밤 같이 캄캄하던 것이 나타날 수 있었으랴?
 장남(長男) 희석(希碩)은 개국공신(開國功臣) 봉(封) 평해군(平海君) 증(贈) 우의정(右議政) 시(諡) 양무(襄武)요. 손(孫) 상(象)은 병조판서(兵曹判書) 증(贈) 영의정(領議政)이요, 손(孫) 인(麟)은 예조판서(禮曹判書), 손(孫) 난(鸞)은 병조정랑(兵曹正郞) 겸(兼) 팔도도총제(八道都摠制), 손(孫) 곡(鵠)은 동래부사(東萊府使)라. 기여(其餘) 차손(次孫)이 번연(繁衍)하여 부진록(不盡錄)하노라. 명왈(銘曰)
平海古家 (평해고가) 평해(平海) 가문에
世有哲人 (세유철인) 대대(代代)로 철인(哲人)이 나니
休休版圖 (휴휴판도) 판도판서가 끊이지 않고
蓋官 (전지개관) 有嗣俊英 (유사준영) 훌륭한 자손(子孫)들이
佐聖樹功 (좌성수공) 임금을 도와 공(功)을 세우니
聖曰贈秩 (성왈증질) 임금이 증작(贈爵)을
嘉乃若翁 (가내약옹) 그 부조(父祖)들에 까지 하더라
葛阡佳城 (갈천가성) 칡 덤불 속에 묻힌 선영(先塋)을 찾아
改築隆然 (개축융연) 새로 고쳐 봉축하니
如月甚恒 (여월심항) 그믐달이 다시 차서
雖晦復 (수회복원) 세상(世上)을 비치게 했네
謨裕貽後 (모유이후) 조선(祖先)의 음덕과
誠竭孝先 (성갈효선) 자손(子孫)의 효성(孝誠)이 극진하니
是祖是孫 (시조시손) 대대(代代) 손손(孫孫)
于顯其光 (우현기광) 영광(榮光)이 있으리라
昔我按北 (석아안북) 지난날 내가 관북(關北)의 안찰사(按擦使)일 때
撫古嗟傷 (무고차상) 이 고적을 어루만지며 차탄(嗟歎)했는데
後州餘禩 (후주여사) 그로부터 30여년(三十餘年)이지만
勤斯銘章 (근사명장) 이제야 갈명을 새기네
嵂嵂雲山 (율율운산) 높고 높은 산 같이
央央江水 (앙앙강수) 도도한 강물처럼 자손(子孫)이 번성하니
龜負片石 (구부편석) 거북 등에 우뚝선 묘갈을
孰不仰止 (숙불앙지) 모두 우러러 보게 하네
  정헌대부(政憲大夫) 전(前) 의정부(議政府) 찬정(贊政) 겸(兼) 장례원(掌禮院) 어원임(卿原任) 규장각(奎章閣) 제학(提學) 반남(燔南) 박기양(朴箕陽) 근찬(謹撰)

c3-054.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21 19:23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