晦窩 黃中燮公 墓碑
晦窩 黃中燮公 墓碑
回文山 구비구비 사연도 많은데、 香火 끝이지 않는 양지밝은 이 兆域에 계시는 晦窩는 本貫이 平海、 諱가 中燮、 字는 致實이라했고 雅號가 晦窩이다。 一八一一年에 考 檀翁 諱秀瓊公과 妣 扶安金氏의 長男으로 出生하여 一八七三年 考終하시기 까지 六十三年동안 醇朴하신 性品이면서도 流俗에 물들지 않고 孤高하셨다。 文藝와 道學으로 이름이 있었고 申應朝·趙秉悳등의 名宦과 親交로 往復하면서 이들로 부터 매양 「故家의 肖孫」이라고 稱頌받기도 했다。 그리고 오직 先代의 遺稿修輯에 平生을 바쳐서 謄出함이 一百餘卷이나 되었으나 字畵이 한결같이 方正하여 刊行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다고 한다。 一九〇九年의 火變으로 謄寫本이 대부분 灰燼하여 오늘날 찾아볼 수 없음이 못내 哀惜하다。
檀翁무렵부터의 念願이던 龜東祠가 道內儒林들의 議論으로 一八四四年 龜壽洞口에 建立되어 風敎의 상징이 되었으나 一八七一年 書院撤廢令으
로 미상불 철폐해야하는 민망함을 겪기도 했다。 이 龜東祠는 一九六八年 重建되어 往年의 榮譽를 되찾은 일은 多幸한 일이다。
遺集 一卷이 越松世稿에 收載되어 刊行되었다。 墓는 回文山 萬日寺 後 麓 子坐이고 配 長興高氏와 在濂·在學·在鎭의 三男을 두었다。 이제 公이 永逝하신지 一百二十餘年을 지나 崇慕碑를 세우기 위하여 文辭를 요청해 왔다。 이에 景仰하는 마음으로 草하고 銘으로 맺음한다。
구름도 쉬어가는 높고 험한 곳일지라도 마땅히 들어누울 임자가 있었다오
알맞은 주인이시니 편히 쉬시고 후손에게 복지어 주소서。
二〇〇一年 봄
玄孫 元九 삼가 짓고
六世孫 邦衍 삼가 쓰고
五世孫 炳茂 삼가 세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