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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8-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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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樵黃頤墓碣銘

聖樵黃頤墓碣銘
公姓黃諱頤字有中號聖樵平海人在高麗忠烈朝有諱璩大匡輔國 諡忠敬歷 八世諱天祥門下贊成事高祖諱之碩官資憲大夫漢城判尹刑曹判書曾祖諱旱 雨通訓大夫軍資監正祖諱岐通政大夫忠勳府都正考諱道漢城判尹妣貞夫人 全州李氏亨俊之女有女士行以 成化十四年戊戌生公于梧谷里第幼有異質 十三通論孟詩書及長明解時務備諳典故而處事寬厚持行廉勤士林以淸白稱 之至有實蹟之載在郡誌孝友以治家敦睦以處族鄉黨州里間每先人而後已謙 順和悦無非潛德中出來以篤行除將仕郎庚午考終享年九十三追 贈嘉善大 夫同知中樞府事葬于郡北梧谷里未坐原配貞夫人月城李氏寶明之女益齋先 生之后有一男仲壽禮賓主簿主簿生六男長百齡通德郎次千齡三萬齡四億齡 五德齡通政六福齡孫曾以下多不盡錄嗚呼公以孝友之性廉謹之行視事周祥 接人寬厚可以有為於世而不幸值立賢有方之日雖不能展布所蘊一生事爲每 從忠厚邊做去盖多功效之及人觀其雲仍之蕃行世傳孝友間有科慶始驗潛德

之受報不爽矣舊碼為風雨所頹今將改竪後孫一河景運甫求記於寅錫謹摭其 實行如右云 銘曰家傳孝友郡載清白濟之以才實根於德雲仍昌熾乃文乃科 此理之昭報施不差百世貞珉賢孫無替
  漢陽趙寅錫撰

聖樵黃頤墓碣銘
    ※第十二世祖 오곡리 배나무골 碣銘
 公의 姓은 黃이요 諱는 頤字는 有中號는 聖樵라 平海人이니 高麗忠烈王朝에 諱璃이라는 분이 계셔 벼슬이 大匡輔國이요 諡는 忠敬公이라。그後四世를 지나서 諱天祥이니 門下贊成事요 高祖 는 諱之碩이니 官資憲大夫漢城判尹刑曹判書요 曾祖의 諱는 早雨니 通訓大夫軍資監正이요 祖의 諱 는 岐니 通政大夫忠勳府都正이요 考의 諱는 道니 漢城判尹이라。她貞夫人은 全州李氏亨俊의 女로 品行이 方正하고 節度가 있었다.成化十四年 戊戌年에 梧谷里邸에서 公을 生하시다.幼時로부터 公의 資質이 特異하여 十三歲에 論孟詩書를 通達하고 長成함에 時務를 밝게 알고 古典을 널리 記 憶하며 處事에 寬厚하고 行身이 廉勤하야 士林들이 清白하다.稱贊이 籍籍하였다. 고로 그의 事蹟 이 郡誌에까지 실려 있으며 父母에게는 孝道하고 兄弟에게는 友愛하며 집안은 사랑으로 다스렸고 族親에게는 敦睦으로 接하여 遠近鄉黨간에는 每事에 남을 먼저하고 自己를 뒤로하는 謙讓和悦의 處事가 숨은 德性中에서 나타났다 하더라.

 篤行之士로 將仕郎에 除受되고 庚午에 考終하니 享年이 九十三歲斗。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에 追贈으로 郡北梧谷里未坐原에 安葬하였다。配는 貞夫人月城李氏요 寶明의 女로 益齋先生의 後孫 이다.一男을 두었으니 名은 仲壽요 禮賓主簿斗。主簿는 六男을 生하니 長曰百齡이니 通德郎이요 次曰千齡이요 三曰萬齡이요 四曰億齡이요 五曰德齡이니 通政이요 六曰福齡이라。以下는 子孫이 繁衍하여 다 記錄하지 못하노라.

 鳴呼라。公이 父母에게 孝道하고 兄弟間에 友愛하며 至誠과 廉勤한 行實로 每事에 致密하고 昭 詳하여 사람을 對하는데 寬厚하니 社會에 큰일을 할수 있는 人才였음에는 틀림이 없었거늘 平生 이 不遇하여 立賢有方치 못하였음은 恨事였다.그러나 一生에 行한일이 항상 忠實하고 厚德하여 사람에게 미친바 功劾가 첫더라.그후 子孫의 繁衍함과 代代로 孝友承傳하였으며 科宦이 間或있 었음을 볼때 隱德의 報答을 받은 증험이 틀리지 않도다.舊碣이 오랜 風雨에 頹敗되어 이제 다시 改立코자 一河景雲氏가나 寅錫에게 記文을 請함으로 그 實行事蹟을 간추렸노라。銘曰

家傳孝友 가전효우 父母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는 道理를 後孫에게 傳하였고 郡載清白 군재청백 맑고 깨끗한 행실은 郡誌에도 記錄되었다. 濟之以才 제지이재 치밀하고 소상하며 관후함이 빈틈없는 처사에 능란한 제질은 實根於德 실근어덕 타고난 천품과 평생을 닦은 덕행이 연유한다. 雲仍昌熾 운잉창치 後孫이 번성합이요 원의 불길같고 乃文乃科 내문내과 희세의 문장과 연면한 과거가 끊이지 않으니. 此理之昭 차리지소 이는 평생을 두고 사람의 도리와 남에게 끼친 사랑의 보답이며

報施不差 보시블차 그 행적에 하나님의 돌보심에 차착이 없음이로다. 百世貞珉 백세정민 백년천년을 두고 이 비석에 記錄된 실적이 더욱 빛날것이며 賢孫無替 현손무채 어진 후손들이 계속나서 이런 좋은 일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漢陽趙寅錫撰

c8-023.1749167169.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6/06 08:46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