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104
차이
문서의 선택한 두 판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양쪽 이전 판이전 판다음 판 | 이전 판 | ||
a-104 [2025/05/21 12:32] – ssio2 | a-104 [2025/05/26 10:02] (현재) – ssio2 | ||
---|---|---|---|
줄 1: | 줄 1: | ||
- | ===자헌대부공조판서미균황선생신도비(資憲大夫工曹判書米困黃先生神道碑)=== | + | ===자헌대부공조판서미균황선생신도비(資憲大夫工曹判書米囷黃先生神道碑)=== |
<WRAP 35em justify>< | <WRAP 35em justify>< | ||
<typo ff:' | <typo ff:' | ||
- | \_資憲大夫工曹判書米困黃先生神道碑\\ | + | \_資憲大夫工曹判書米囷黃先生神道碑\\ |
- | 昔我\_康獻王之時有資憲大夫工曹判書米国先生黃公事行文獻必有可傳於世者 | + | 昔我\_康獻王之時有資憲大夫工曹判書米囷先生黃公事行文獻必有可傳於世者 |
而累經兵燹遺蹟蕩佚墓所則在於榮之東斗月里德洞山乙坐之原而子孫分屑年代 | 而累經兵燹遺蹟蕩佚墓所則在於榮之東斗月里德洞山乙坐之原而子孫分屑年代 | ||
愈遠嘗有樵牧之口傳猶不得深目之詳徵嗟乎遠矣當當千孫之祖豈無尊崇之典迺 | 愈遠嘗有樵牧之口傳猶不得深目之詳徵嗟乎遠矣當當千孫之祖豈無尊崇之典迺 | ||
- | 於\_上之甲辰歲閏論舉郁芝諸宗設壇奠嘗已數百禩矣然尚以儀物事蹟之未修爲 | + | 於\_上之甲辰歲閏論擧郁芝諸宗設壇奠嘗已數百禩矣然尙以儀物事蹟之未修爲 |
- | 後裔之恨今於戊午秋遠近宗族合謀伐石將擬神道碑其後裔孫世燮甫賣斗庵金公 | + | 後裔之恨今於戊午秋遠近宗族合謀伐石將擬神道碑其後裔孫世燮甫<fc #ff0000>賣</fc>斗庵金公 |
所撰壇碑文一篇來請余銘其碑竊惟斗庵公即中古之斯文宿德也考據必詳立言甚 | 所撰壇碑文一篇來請余銘其碑竊惟斗庵公即中古之斯文宿德也考據必詳立言甚 | ||
確宜足以徵信於來世矣何必以諛陋無文如晉秀者濫加重責惡能妄自增損以揄揚 | 確宜足以徵信於來世矣何必以諛陋無文如晉秀者濫加重責惡能妄自增損以揄揚 | ||
- | 哉固辭不獲謹按公諱有定號米困黃氏貫平海高麗太子檢校諱溫仁其肇祖也四傳 | + | 哉固辭不獲謹按公諱有定號米囷黃氏貫平海高麗太子檢校諱溫仁其肇祖也四傳 |
- | 日璡麗朝官檢校軍資監曰之挺曰原老號七林亭登第宰寧海府曰瑾文科直提學於 | + | 曰璡麗朝官檢校軍資監曰之挺曰原老號七林亭登第宰寧海府曰瑾文科直提學於 |
公爲高曾祖若考也公以元至正三年癸未生登文科尹漢城府判禮工曹自少至老愛 | 公爲高曾祖若考也公以元至正三年癸未生登文科尹漢城府判禮工曹自少至老愛 | ||
- | 誦論語一部世稱米困先生詩文有唐人風調出仕中外晚以謝病南歸掃灑軒楣於龜 | + | 誦論語一部世稱米囷先生詩文有唐人風調出仕中外晩以謝病南歸掃灑軒楣於龜 |
- | 城下城底里第即三判書古宅是也配貞夫人奉化鄭氏刑部尚書云敬女生三男一女 | + | 城下城底里第即三判書古宅是也配貞夫人奉化鄭氏刑部尙書云敬女生三男一女 |
- | 長銓薦持平次鉉成均館大司成次鋌生員訓導女宣城金少良縣令\_贈兵判銓男孟 | + | 長銓薦持平次鉉成均館大司成次鋋生員訓導女宣城金少良縣令\_贈兵判銓男孟 |
- | 夏生員仲夏出系仲父鉉后季夏監察女權孝騫進士鉉男仲夏生員孫曰啟沃弘文館 | + | 夏生員仲夏出系仲父鉉后季夏監察女權孝騫進士鉉男仲夏生員孫曰啓沃弘文館 |
- | 應教號草谷鋌男末孫宣教郎金縣令男淡文吏判\_諡文節公曾孫\_曰俊良文郡守 | + | 應敎號草谷鋋男末孫宣敎郞金縣令男淡文吏判\_諡文節公曾孫\_曰俊良文郡守 |
世稱錦溪先生季孫學官女李塢直提學餘不錄於乎公之世遠矣姿性言行何可詳也 | 世稱錦溪先生季孫學官女李塢直提學餘不錄於乎公之世遠矣姿性言行何可詳也 | ||
- | 窈想公平生之勤讀魯傳可以知姿性之美踐履之竺也纔經華世歷歇中外亦可以認 | + | 窈想公平生之勤讀魯傳可以知姿性之美踐履之竺也纔經華世歷敭中外亦可以認 |
所抱之實經濟之擴也當時朝評公之詩文有唐人風調文章事行已著於世斯可以想 | 所抱之實經濟之擴也當時朝評公之詩文有唐人風調文章事行已著於世斯可以想 | ||
像於百世之遠矣何用以愚言之贅是爲銘銘曰懿歟米老邵代碩德爱入\_國初擢拜 | 像於百世之遠矣何用以愚言之贅是爲銘銘曰懿歟米老邵代碩德爱入\_國初擢拜 | ||
- | 崇爵工深魯傳詩合唐調德業文章宜顯于世間經兵燹家乘幾掃暨及墓所久闕守護 | + | 崇爵工深魯傳詩合唐調德業文章宜顯于世間經兵燹家乘幾掃曁及墓所久闕守護 |
兩世封塋難析疑信乃築祭壇焄享歲薦今竪顯碑昭揚厥蹟雲仍增悵路人必式我銘 | 兩世封塋難析疑信乃築祭壇焄享歲薦今竪顯碑昭揚厥蹟雲仍增悵路人必式我銘 | ||
其最永詔千歷\\ | 其最永詔千歷\\ | ||
줄 34: | 줄 34: | ||
\\ | \\ | ||
\_자헌대부 공조판서 미균 황선생 신도비\\ | \_자헌대부 공조판서 미균 황선생 신도비\\ | ||
- | \_옛날 강헌대왕(康獻大王)때에 자헌대부 공조판서 미균(未困)선생이 있었으니 사적(事跡)과 | + | \_옛날 강헌대왕(康獻大王) 때에 자헌대부 공조판서 미균(未囷)선생이 있었으니 사적(事跡)과 |
문헌(文獻)이 반드시 세상에 전해질 만한 것이 있었을 것인데 여러 차례 난리를 겪는 동안 | 문헌(文獻)이 반드시 세상에 전해질 만한 것이 있었을 것인데 여러 차례 난리를 겪는 동안 | ||
불타서 유적(遺跡)이 없어지고 묘소도 영주(榮州) 동쪽 두월리(斗月里) 덕동산(德洞山) | 불타서 유적(遺跡)이 없어지고 묘소도 영주(榮州) 동쪽 두월리(斗月里) 덕동산(德洞山) | ||
- | 을좌원(乙坐原)에 있었으나 자손들이 갈리어 흩어지고 연대가 더욱 오래되어 | + | 을좌원(乙坐原)에 있었으나 자손들이 갈리어 흩어지고 연대가 더욱 오래되어 |
목동(牧童)들의 입으로 여기가 황공의 산소라고 하는 구전(口傳)은 있었으나 눈으로 상세하게 | 목동(牧童)들의 입으로 여기가 황공의 산소라고 하는 구전(口傳)은 있었으나 눈으로 상세하게 | ||
징험을 거치지는 못하고 지나오고 있다.\\ | 징험을 거치지는 못하고 지나오고 있다.\\ | ||
줄 43: | 줄 43: | ||
들이는 법이 없어서야 되리오. 이에 갑진(甲辰)(1424(一四二四))년 윤달에 여러 종친들이 제단을 | 들이는 법이 없어서야 되리오. 이에 갑진(甲辰)(1424(一四二四))년 윤달에 여러 종친들이 제단을 | ||
설치하고 제사를 받든지가 이미 수백년이나 되었다.\\ | 설치하고 제사를 받든지가 이미 수백년이나 되었다.\\ | ||
- | \_그러나 아직도 의믈(儀物)과 사적(事跡)을 갖추지 못한 까닭으로 후손들이 한(恨)이 되고 | + | \_그러나 아직도 의물(儀物)과 사적(事跡)을 갖추지 못한 까닭으로 후손들이 한(恨)이 되고 |
- | 있었는데 이제 무오년(一九七八) 가을 멀리 또는 가까이 살고 있는 여러 종친들이 함께 | + | 있었는데 이제 무오년(1978(一九七八)) 가을 멀리 또는 가까이 살고 있는 여러 종친들이 함께 |
상의하여 돌을 잘라 다듬어 곧 신도비(神道碑)를 세우려고 하였다.\\ | 상의하여 돌을 잘라 다듬어 곧 신도비(神道碑)를 세우려고 하였다.\\ | ||
- | \_그 후손인 세섭(世燮) 선비가 두암 | + | \_그 후손인 세섭(世燮) 선비가 두암(斗庵) 김공(金公)이 지은 단비문 한편을 싸가지고 나에게 |
찾아와 그 비의 명(銘)을 짓기를 청하거늘 생각하건대 두암(斗庵)공은 즉 조선 중세의 유학자로 | 찾아와 그 비의 명(銘)을 짓기를 청하거늘 생각하건대 두암(斗庵)공은 즉 조선 중세의 유학자로 | ||
크게 덕망이 높은 분이니 모든 근거를 상고(詳考)하여 심히 확고하게 글을 지었을 것이니 | 크게 덕망이 높은 분이니 모든 근거를 상고(詳考)하여 심히 확고하게 글을 지었을 것이니 | ||
- | 의당 후세에 신빙성 있고 만족하게 갖추어있을 것이다.\\ | + | 의당 후세에 신빙성 있고 만족하게 갖추어 있을 것이다.\\ |
\_그런데 하필 부족하고 보잘 것 없고 글이 짧은 나 진수(晉秀)에게 지나치게 무거운 | \_그런데 하필 부족하고 보잘 것 없고 글이 짧은 나 진수(晉秀)에게 지나치게 무거운 | ||
책임을 맡기니 어찌 함부로 사실에 없는 것을 더하거나 빼어 찬양할 수 있겠는가? | 책임을 맡기니 어찌 함부로 사실에 없는 것을 더하거나 빼어 찬양할 수 있겠는가? | ||
\_그래서 진실로 한사코 사양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_그래서 진실로 한사코 사양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
- | \_삼가 상고하건대 공의 휘는 유정(有定)이요 호는 미균(米菌)이고 황씨(黃氏)인데 본관은 | + | \_삼가 상고하건대 공의 휘는 유정(有定)이요 호는 미균(米囷)이고 황씨(黃氏)인데 본관은 |
- | 평해(平海)이고 고려태자검교(高麗太子檢校) 휘 온인(溫仁)은 그의 시조이다.\\ | + | 평해(平海)이고 고려(高麗) |
- | \_4(四)대를 내려와 진(進)은 고려조에 검교rns자감(檢校軍資監)의 벼슬을 하였고 다음 대는 | + | \_4(四)대를 내려와 진(璡)은 고려조에 검교군자감(檢校軍資監)의 벼슬을 하였고 다음 대는 |
지정(之挺)이며 또 다음 대는 원로(原老)이니 호가 칠림정(七林亭)인데 과거에 올라 | 지정(之挺)이며 또 다음 대는 원로(原老)이니 호가 칠림정(七林亭)인데 과거에 올라 | ||
영해부사(寧海府使)가 되었고, 다음 대는 근(瑾)인데 문과에 올라 직제학까지 했으니 공(公)에게는 | 영해부사(寧海府使)가 되었고, 다음 대는 근(瑾)인데 문과에 올라 직제학까지 했으니 공(公)에게는 | ||
줄 73: | 줄 73: | ||
(季夏)는 감찰(監察)이다. 전(銓)의 딸은 안동권씨 효건(孝騫)에게 출가했는데 그는 | (季夏)는 감찰(監察)이다. 전(銓)의 딸은 안동권씨 효건(孝騫)에게 출가했는데 그는 | ||
진사(進士)다. 현(鉉)의 아들은 중하(仲夏)인데 생원이요, | 진사(進士)다. 현(鉉)의 아들은 중하(仲夏)인데 생원이요, | ||
- | 홍문관응교(弘文館應教)로 호(號)가 초곡(草谷)이다. 연(鋋)의 아들은 말손(末孫)이니 | + | 홍문관응교(弘文館應敎)로 호(號)가 초곡(草谷)이다. 연(鋋)의 아들은 말손(末孫)이니 |
- | 선교랑(宣教郎)이고 김소량 현령(公의 사위)의 아들은 담(淡)인데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 + | 선교랑(宣敎郞)이고 김소량 현령(公의 사위)의 아들은 담(淡)인데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
- | 이조판서였고, | + | 이조판서였고, |
\_증손에 준량(俊良)이 있으니 문과(文科)로 군수이고 세상에서 금계선생(錦溪先生)이라고 불리었다. 또 연(鋋)의 아들은 계손(季孫)인데 학관(學官)이었고, | \_증손에 준량(俊良)이 있으니 문과(文科)로 군수이고 세상에서 금계선생(錦溪先生)이라고 불리었다. 또 연(鋋)의 아들은 계손(季孫)인데 학관(學官)이었고, | ||
\_오호라! 공(公)의 태어난 세대(世代)가 오래 되었으니 바탕이 된 성품과 언행을 어떻게 상세히 알 수가 있으리오, | \_오호라! 공(公)의 태어난 세대(世代)가 오래 되었으니 바탕이 된 성품과 언행을 어떻게 상세히 알 수가 있으리오, | ||
줄 82: | 줄 82: | ||
\_당시에 조야(朝野)에서는 공의 시문을 논평하여 당나라 풍조가 있다고 하였고, 문장과 사행(事行)이 이미 세상에 나타났으니 가히 여기에서 백세(百世)까지 원대하게 전해갈 것을 가히 상상할 수 있다. 그러니 어찌 우둔한 말로 자질구레하게 군더더기 같은 말로 더 보태어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에 명(銘)을 짓노라.\\ | \_당시에 조야(朝野)에서는 공의 시문을 논평하여 당나라 풍조가 있다고 하였고, 문장과 사행(事行)이 이미 세상에 나타났으니 가히 여기에서 백세(百世)까지 원대하게 전해갈 것을 가히 상상할 수 있다. 그러니 어찌 우둔한 말로 자질구레하게 군더더기 같은 말로 더 보태어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에 명(銘)을 짓노라.\\ | ||
명에 이르기를, | 명에 이르기를, | ||
- | 懿歟米老 아름답도다! 미균옹(未困翁)이여 \\ | + | 懿歟米老 아름답도다! 미균옹(未囷翁)이여 \\ |
邵代碩德 태평성대의 높은 덕망가였구나!\\ | 邵代碩德 태평성대의 높은 덕망가였구나!\\ | ||
爱入國初 이에 조선 초에 들어와 \\ | 爱入國初 이에 조선 초에 들어와 \\ | ||
擢拜崇爵 높은 관작(官爵)에 임명되었도다.\\ | 擢拜崇爵 높은 관작(官爵)에 임명되었도다.\\ | ||
- | 工深魯傳 공부는 논어(魯傳)에 깊었고, \\ | + | 工深魯傳 공부는 논어(노전(魯傳))에 깊었고, \\ |
詩合唐調 시(詩)는 당(唐)나라 풍조에 합치되었도다. \\ | 詩合唐調 시(詩)는 당(唐)나라 풍조에 합치되었도다. \\ | ||
德業文章 덕업과 문장이 \\ | 德業文章 덕업과 문장이 \\ | ||
줄 92: | 줄 92: | ||
間經兵燹 그 동안 병화(兵火)를 겪게 되자 \\ | 間經兵燹 그 동안 병화(兵火)를 겪게 되자 \\ | ||
家乘幾掃 집안의 역사가 거의 다 없어지고, | 家乘幾掃 집안의 역사가 거의 다 없어지고, | ||
- | 暨及墓所 묘소도 (매 한가지로) \\ | + | 曁及墓所 묘소도 (매 한가지로) \\ |
久闕守護 오랫동안 수호를 못하니\\ | 久闕守護 오랫동안 수호를 못하니\\ | ||
- | 兩世封塋 두 대(두代)의 무덤이 \\ | + | 兩世封塋 두 대(代)의 무덤이 \\ |
難析疑信 구분하기 어렵게 되었구나. \\ | 難析疑信 구분하기 어렵게 되었구나. \\ | ||
乃築祭壇 이에 제단(祭壇)을 쌓았으니\\ | 乃築祭壇 이에 제단(祭壇)을 쌓았으니\\ |
a-104.1747798366.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21 12:32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