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방황필구묘갈략(察訪黃弼耉墓碣略)
찰방 황필구 묘갈략
정선군청 바로 동쪽에 사음대 마갈산이 있고, 그 북쪽을 누비고
누운 언덕 말갈기에 봉분이 있으니, 이는 찰방 황(黃)공 필구(弼耉)의 묘라.
공의 자는 경수(景壽)니 숙종 기묘(己卯)(1699)에서 서울 연동에서 생하고,
영조 임자(壬子)에 문과에 등제하여 관직이 6품계에 승진되어
대동도 찰방을 제수받았으나, 임기 만료 전에 인끈을 풀어놓고 태백산 춘양동에 돌아와 종신토록 진용을 원치않아, 우로전의 은사를 입어 2품계로 오르고
정조 경자(庚子) 10월 8일에 수 82로 사음대 정침에서 고종하였다.
그 선계는 평해인이오, 양무공 휘 희석(希碩)은 공의 원조로
태조 개국공신 평해군이오, 6대를 내려와 이조참의 휘 서(瑞)는 공의 7대조라,
증조의 휘는 득영(得英)이니 승지요, 조의 휘는 대원(大元)이니 현감이요,
선고의 휘는 상헌(尙憲)이니 증 예조참판이요, 선비는 순흥 안씨이니,
외조는 영일(永逸)이요 관은 가선이라. 배는 정선 전유장(全有章)의 여요,
공의 품계를 따라 봉 정부인하니 공보다 3년전 생하고, 1년전
졸하였으며, 묘는 같은 산 간(艮)좌원하니라.
슬하에 2남을 두었으니 재중(在中) 윤중(允中)이라 모두 통덕랑이라.
여는 사인 강식(姜湜)에게 출가하다. 재중(在中)의 아들은 진(𣛎)이오,
윤중(允中)의 아들은 박(樸)이라, 수청(洙淸) 만청(晩淸) 계청(繼淸)은 진(𣛎)의 소생이요, 시청(始淸) 인청(仁淸) 치청(致淸)은 박(樸)의 소생이다.
공이 우문에서 나서 성명조정(聖明朝庭)에서 단번에 문과에 으뜸으로
뽑히되 꼭 땅에서 검불을 줍는 듯이 하였으니, 그 흉중에
싸인 바가 많치 않고서야 어찌 표병조휘함이 이와 같겠는가?
진실로 웅문대가에 이목 이라도 능히 이렇게 평하지 아니치
못하리로다. 어릴 때부터 청운에 뜻을 두고 진취할 의도만 가졌다면
관직의 고하나 질록의 후박은 논할 것 없고, 끝내는
자연히 물망에 오르내리다, 후일에 학사대부의 자리는 획득하였으리라고
단언하겠으나, 그럼으로 다시 그의 심중을 추리해 볼 때
올바른 도리를 행하기 위하여는, 세상 영달을 잊고
세속에서 멀리 떨어진 경지에 몸을 두고 초목과 같이 썩을지라도
조금도 마음에 구애됨이 없는 그 어떤 신비의 체험에서 얻어진 결론으로
매진한 것인지도 모르겠도다.
바야흐로 벼슬하지 않고 자행자지하며 세상을 피하여
무아 상태에서 신인합일 경지로 화평과 희락을 누리고,
또 때로는 높은 산 깊은 물의 동정에 감회하니,
조정의 현사진퇴는 관심이 없고, 또는 금관자 옥관자 청송백록을 무늬놓은
초현홍포 등 귀인의 화려한 의상과 장식이 알지 못할게라.
어느 것이 귀하고 어느 것이 천한가? 그러나 내가 지키고 온전히
가야할 것은 천부(天賦)의 선성(善性)과 조상들이 남긴 유업,
효우충신은덕의 길뿐이니라. 무릇 스스로 호를 서우(西愚)라 한 것을
볼지라도 검약과 은둔한 생활을
가히 보겠도다.
그러나 충효에 유심하고 경전에 힘을 기울여 나아가서 후진을 장육하여
유교사상을 일으켜 교화가 적막한 산간과 황망한 해추에 까지
취급하였으니 장저(長沮) 걸닉(桀溺)의 무리와 같이 망세독왕(忘世獨往)한
것도 아니니, 오호라 현인이였도다.
대저 권세와 명리를 탐하여 염치없이 나아갈 줄만 알고
그칠 줄을 모르는 자, 그 종말은 나라에 화를 더하고 백성에게 해를
끼치고,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고 인생을 구원치 못하느니라.
그렇지 않으면 산상에서 해변에서 마음을 어둡게 하여 인의를
외면하고 도덕을 무시하며 하늘에 오르고 구름을 잡는 듯이
과대망상증에 빠지는 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어늘
그러면 공은 어떠하였는가?
진실로 공은 세속에서 초연함을 알 수 있도다.
그런즉 공이 만약 신절을 잡고 조정에서 계속 시위하였더라면 잘못이
아니었으리라 생각하노니. 공이 지은 시문(詩文)이 화재로 소실되었으니,
후인이 다시 그 덕성을 생각하고 면구할 근거가 없어졌도다.
이것이 조물주가 공의 본 뜻이 그 재질이나 학문을 나타내지
않으려는 것을 잘 아는데서 온 희극이 아니었는지 모를 일이로다.
만청(晩淸)의 아들 석(㙽)이 그 삼종손 하원(河源)을 대동하고
태산준령을 넘어서 5백리를 달려와 갈명을 지어 줄 것을 청하는지라,
나는 죽은 사람을 썩지 않게 할 능력이 없음으로 고사하였다.
그러나 재삼간청이 극진함으로 피치 못하여 명을 짖노라.
명(銘)왈
解緩歸隱 인끈을 풀어놓고 돌아와 은거하나,
匪我果忘 세상을 저버리고 잊으려는 것은 아니다.
劬經造士 경전을 힘써 배우고 학문을 깊이 닦아서,
愛及後昌 후배들이 흥창하게 함이로다.
天錫遐齡 하늘이 목숨을 길게 해주시고,
王爵有章 나라의 임금이 벼슬을 내리시도다.
琢辭貞石 아름다운 비석에 빛나는 행적을 새기니,
永照無疆 길이 비추어서 무궁하리로다.
이조 참판 광산 김학수(金鶴洙) 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