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3-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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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議政公墓碣寫**\\ | \_**議政公墓碣寫**\\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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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지난 계사년(癸巳年)에 내가 관북(關北)의 안찰사(按察使)로 | \_지난 계사년(癸巳年)에 내가 관북(關北)의 안찰사(按察使)로 | ||
- | 지방(地方) 순찰을 할 때 영흥(永興) 땅에서 | + | 지방(地方) 순찰을 할 때, 영흥(永興) 땅에서 |
- | 황종률(黃鍾律) 황희준(黃熹俊)의 어진 이름을 듣고 예(禮)로써 맞이하니 그 | + | 황종률(黃鍾律) 황희준(黃熹俊)의 어진 이름을 듣고, 예(禮)로써 맞이하니 그 |
- | 용의(容儀)가 유아(儒雅)하고 언행(言行)이 충서(忠恕)함을 보고 벌써 영지(靈芝)와 | + | 용의(容儀)가 유아(儒雅)하고 언행(言行)이 충서(忠恕)함을 보고, 벌써 영지(靈芝)와 |
예천(醴泉)의 근원(根源)이 유래(有來)가 있음을 알겠더라. 도내(道內)의 | 예천(醴泉)의 근원(根源)이 유래(有來)가 있음을 알겠더라. 도내(道內)의 | ||
고적을 고찰(考察)하다가 고원군(高原郡)에 황정승(黃政丞)의 묘(墓)가 | 고적을 고찰(考察)하다가 고원군(高原郡)에 황정승(黃政丞)의 묘(墓)가 | ||
있으되 실전(失傳)한지 이미 오래됨을 들었다. 황정승(黃政丞)은 고려(高麗)의 | 있으되 실전(失傳)한지 이미 오래됨을 들었다. 황정승(黃政丞)은 고려(高麗)의 | ||
어진 재상(宰相)으로 희준(熹俊) 종률(鍾律)의 선조(先祖)가 되는지라. | 어진 재상(宰相)으로 희준(熹俊) 종률(鍾律)의 선조(先祖)가 되는지라. | ||
- | 내가 크게 감탄(感歎)한 바 있었더니 세월(歲月)이 오랜 후에 | + | 내가 크게 감탄(感歎)한 바 있었더니, 세월(歲月)이 오랜 후에 |
희준(熹俊) 종률(鍾律) 두 사람이 지석(誌石)을 얻고 그 분영(墳塋)을 | 희준(熹俊) 종률(鍾律) 두 사람이 지석(誌石)을 얻고 그 분영(墳塋)을 | ||
- | 찾은 뒤에 비석(碑石)을 세우고자 나에게 묘갈명(墓碣銘)을 | + | 찾은 뒤에 비석(碑石)을 세우고자, 나에게 묘갈명(墓碣銘)을 |
청(請)하는지라. 지문(誌文)을 살펴보니 그 내용(內容)이 | 청(請)하는지라. 지문(誌文)을 살펴보니 그 내용(內容)이 | ||
심히 희기(稀奇)한지라. 나의 학문(學文)이 부족(不足)하다 하여 | 심히 희기(稀奇)한지라. 나의 학문(學文)이 부족(不足)하다 하여 | ||
줄 22: | 줄 25: | ||
\_공(公)의 휘(諱)는 천록(天祿)이니 평해인(平海人)이라. | \_공(公)의 휘(諱)는 천록(天祿)이니 평해인(平海人)이라. | ||
황씨(黃氏)는 신라(新羅) 시대(時代)의 학사(學士) 휘(諱) 낙(洛)이라는 | 황씨(黃氏)는 신라(新羅) 시대(時代)의 학사(學士) 휘(諱) 낙(洛)이라는 | ||
- | 분을 처음 시조(始祖)로 삼으며 고려조(高麗朝)에 이르러 휘(諱) 온인(溫仁)이 | + | 분을 처음 시조(始祖)로 삼으며, 고려조(高麗朝)에 이르러 휘(諱) 온인(溫仁)이 |
관(官) 검교(檢校)에 있었고, 그 후(後) 대대(代代)로 더욱 | 관(官) 검교(檢校)에 있었고, 그 후(後) 대대(代代)로 더욱 | ||
- | 벼슬이 혁혁(赫赫)하여 3대(三代)를 전(傳)해 왔는데 | + | 벼슬이 혁혁(赫赫)하여 3대(三代)를 전(傳)해 왔는데, |
- | 휘(諱) 용(< | + | 휘(諱) 용(𤨭)이라는 분이 삼중대광보국(三重大匡輔國)이요 |
- | 시(諡)는 충경공(忠敬公)이며 그 다음 대(代)가 휘(諱) 태백(太白)이니 | + | 시(諡)는 충경공(忠敬公)이,며 그 다음 대(代)가 휘(諱) 태백(太白)이니 |
형조전서(刑曹典書)요 아조(我朝)에 와서 우의정(右議政)을 | 형조전서(刑曹典書)요 아조(我朝)에 와서 우의정(右議政)을 | ||
- | 증직(贈職)하였고 또 그 다음 대(代)가 휘(諱) 우(祐) 병조전서(兵曹典書)니 | + | 증직(贈職)하였고, 또 그 다음 대(代)가 휘(諱) 우(祐) 병조전서(兵曹典書)니 |
아조(我朝)에서 증(贈) 좌의정(左議政)을 제수(除授)하였다. | 아조(我朝)에서 증(贈) 좌의정(左議政)을 제수(除授)하였다. | ||
즉 이분들이 공(公)의 증조(曾祖) 조(祖) 및 부(父)라.\\ | 즉 이분들이 공(公)의 증조(曾祖) 조(祖) 및 부(父)라.\\ | ||
\_공(公)이 려말(麗末)에 벼슬하여 정헌대부(政憲大夫) 밀직부사(密直副使) | \_공(公)이 려말(麗末)에 벼슬하여 정헌대부(政憲大夫) 밀직부사(密直副使) | ||
- | 판도판서(版圖判書)에 이르고 장자(長子) 희석(希碩)은 아(我) 태조(太朝)를 | + | 판도판서(版圖判書)에 이르고, 장자(長子) 희석(希碩)은 아(我) 태조(太朝)를 |
도와 개국훈(開國勳)에 책록(策錄)함으로써 | 도와 개국훈(開國勳)에 책록(策錄)함으로써 | ||
공(公)에게 | 공(公)에게 | ||
줄 40: | 줄 43: | ||
묘소(墓所)가 고원군(高原郡) 군내면(郡內面) 신흥리(新興里) | 묘소(墓所)가 고원군(高原郡) 군내면(郡內面) 신흥리(新興里) | ||
갈고개(葛古介) 임좌지원(壬坐之原)이요, | 갈고개(葛古介) 임좌지원(壬坐之原)이요, | ||
- | 금하(今夏)에 비로소 다시 봉축(封築)을 하였으니 슬프다 공(公)의 | + | 금하(今夏)에 비로소 다시 봉축(封築)을 하였으니, 슬프다 공(公)의 |
내외(內外)는 역양(歷敭) 즉 청환(淸宦)으로 오래도록 | 내외(內外)는 역양(歷敭) 즉 청환(淸宦)으로 오래도록 | ||
국가(國家)에 봉사(奉仕)하며 가유위적(嘉猷偉積) 좋은 정책(政策)과 | 국가(國家)에 봉사(奉仕)하며 가유위적(嘉猷偉積) 좋은 정책(政策)과 | ||
큰 공훈(功勳)을 세웠음이 족(足)히 시속(時俗)을 바르게 하고 | 큰 공훈(功勳)을 세웠음이 족(足)히 시속(時俗)을 바르게 하고 | ||
- | 후대(後代)에 빛나야 할 것이어늘 세기(世紀)가 너무 멀고 | + | 후대(後代)에 빛나야 할 것이어늘, 세기(世紀)가 너무 멀고 |
사기(史記)와 문적(文籍)이 궐실(闕失)한 것이 많고 삼척(三尺) | 사기(史記)와 문적(文籍)이 궐실(闕失)한 것이 많고 삼척(三尺) | ||
- | 분영(墳塋)이 누차 병란(兵亂)과 화재(火災)에 피해를 당(當)하니 | + | 분영(墳塋)이 누차 병란(兵亂)과 화재(火災)에 피해를 당(當)하니, |
가시덤불 속에 입몰(入沒)된지 많은 성상(星霜)을 지났도다. | 가시덤불 속에 입몰(入沒)된지 많은 성상(星霜)을 지났도다. | ||
진실로 영혼(靈魂)이 불매(不昧)하고 후예(後裔)의 진심갈성(盡心竭誠)이 | 진실로 영혼(靈魂)이 불매(不昧)하고 후예(後裔)의 진심갈성(盡心竭誠)이 | ||
- | 아니었으면 어찌 다시금 그믐밤 같이 캄캄하던 것이 나타날 수 있었으랴? | + | 아니었으면, 어찌 다시금 그믐밤 같이 캄캄하던 것이 나타날 수 있었으랴? |
\_장남(長男) 희석(希碩)은 개국공신(開國功臣) 봉(封) 평해군(平海君) | \_장남(長男) 희석(希碩)은 개국공신(開國功臣) 봉(封) 평해군(平海君) | ||
줄 58: | 줄 61: | ||
기여(其餘) 차손(次孫)이 번연(繁衍)하여 부진록(不盡錄)하노라. | 기여(其餘) 차손(次孫)이 번연(繁衍)하여 부진록(不盡錄)하노라. | ||
명왈(銘曰)\\ | 명왈(銘曰)\\ | ||
- | 平海古家世有哲人(평해고가세유철인) 평해(平海) 가문에 대대(代代)로 철인(哲人)이 나니\\ | + | 平海古家 (평해고가) 평해(平海) 가문에\\ |
- | 休休版圖展地蓋官(휴휴판도전지개관) 판도판서가 끊이지 않고\\ | + | 世有哲人 (세유철인) |
- | 有嗣俊英佐聖樹功(유사준영좌성수공) 훌륭한 자손(子孫)들이 임금을 도와 공(功)을 세우니\\ | + | 休休版圖 (휴휴판도) 판도판서가 끊이지 않고\\ |
- | 聖曰贈秩嘉乃若翁(성왈증질가내약옹) | + | 展< |
- | 葛阡佳城改築隆然(갈천가성개축융연) 칡 덤불 속에 묻힌 선영(先塋)을 찾아 봉축하니\\ | + | 有嗣俊英 (유사준영) 훌륭한 자손(子孫)들이\\ |
- | + | 佐聖樹功 (좌성수공) | |
- | 如月甚恒離晦復圓(여월심항수회복원) 그믐달이 다시 차서 세상(世上)을 비치게 했네\\ | + | 聖曰贈秩 (성왈증질) 임금이 증작(贈爵)을\\ |
- | 謨裕貽後誠竭孝先(모유이후성갈효선) 조선(祖先)의 음덕과 자손(子孫)의 효성(孝誠)이 극진하니\\ | + | 嘉乃若翁 (가내약옹) 그 부조(父祖)들에 까지 하더라\\ |
- | 是祖是孫于顯其光(시조시손우현기광) 대대(代代) 손손(孫孫) 영광(榮光)이 있으리라\\ | + | 葛阡佳城 (갈천가성) 칡 덤불 속에 묻힌 선영(先塋)을 찾아\\ |
- | 昔我按北撫古嗟傷(석아안북무고차상) 지난날 내가 관북(關北)의 안찰사(按擦使)일 때 이 고적을 어루만지며 차탄(嗟歎)했는데\\ | + | 改築隆然 (개축융연) 새로 고쳐 |
- | 後州餘사勤斯銘章(후주여사근사명장) 그로부터 30여년(三十餘年)이지만 이제야 갈명을 새기네\\ | + | 如月甚恒 (여월심항) 그믐달이 다시 차서\\ |
- | 율율雲山央央江水(율율운산앙앙강수) 높고 높은 산 같이 도도한 강물처럼 자손(子孫)이 번성하니\\ | + | 雖晦復< |
- | 龜負片石孰不仰止(구부편석숙불앙지) 거북 등에 우뚝선 묘갈을 모두 우러러 보게 하네\\ | + | 謨裕貽後 (모유이후) 조선(祖先)의 음덕과 |
+ | 誠竭孝先 (성갈효선) | ||
+ | 是祖是孫 (시조시손) 대대(代代) 손손(孫孫)\\ | ||
+ | 于顯其光 (우현기광) 영광(榮光)이 있으리라\\ | ||
+ | 昔我按北 (석아안북) 지난날 내가 관북(關北)의 안찰사(按擦使)일 때\\ | ||
+ | 撫古嗟傷 (무고차상) | ||
+ | 後州餘禩 (후주여사) 그로부터 30여년(三十餘年)이지만\\ | ||
+ | 勤斯銘章 (근사명장) | ||
+ | 嵂嵂雲山 (율율운산) 높고 높은 산 같이\\ | ||
+ | 央央江水 (앙앙강수) | ||
+ | 龜負片石 (구부편석) 거북 등에 우뚝선 묘갈을\\ | ||
+ | 孰不仰止 (숙불앙지) | ||
\_\_정헌대부(政憲大夫) 전(前) 의정부(議政府) 찬정(贊政) 겸(兼) 장례원(掌禮院) 어원임(卿原任) 규장각(奎章閣) 제학(提學) 반남(燔南) 박기양(朴箕陽) 근찬(謹撰) | \_\_정헌대부(政憲大夫) 전(前) 의정부(議政府) 찬정(贊政) 겸(兼) 장례원(掌禮院) 어원임(卿原任) 규장각(奎章閣) 제학(提學) 반남(燔南) 박기양(朴箕陽) 근찬(謹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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