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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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嘉善大夫行成均館大司成黃公鉉之祭壇碑銘\\ | \_嘉善大夫行成均館大司成黃公鉉之祭壇碑銘\\ | ||
惟我\_莊憲王時嘉善大夫行成均館大司成黃公謝世之五百有年所矣而羨南之顯 | 惟我\_莊憲王時嘉善大夫行成均館大司成黃公謝世之五百有年所矣而羨南之顯 | ||
- | 石尚不擧其亦有待於後耶鳴乎由五百載之後溯五百載之前固已邈矣然後孫等採 | + | 石尙不擧其亦有待於後耶鳴乎由五百載之後溯五百載之前固已邈矣然後孫等採 |
- | 摭於奎章閣史乘公之資歷始得其概何其晩也百歲之下可即是而考證矣今箕城氏 | + | 摭於奎章閣史乘公之資歷始得其槪何其晩也百歲之下可即是而考證矣今箕城氏 |
諸彦發其幽光將鑱辭以詔來後蓋公與我先祖判書公有蘇黃之義石上之文謬及於 | 諸彦發其幽光將鑱辭以詔來後蓋公與我先祖判書公有蘇黃之義石上之文謬及於 | ||
無似者顧玆晩生識蔑人輕其何能稱述而徵諸久遠哉其請不以人而以吾祖自出之 | 無似者顧玆晩生識蔑人輕其何能稱述而徵諸久遠哉其請不以人而以吾祖自出之 | ||
- | 義則有不可終已者謹依其來錄不敢妄加一字而叙之曰公諱鉉其先平海人資憲大 | + | 義則有不可終已者謹依其來錄不敢妄加一字而敍之曰公諱鉉其先平海人資憲大 |
夫工曹典書有定之子高麗文科直提學諱瑾之孫府使諱原老之曾孫門下侍中諱裕 | 夫工曹典書有定之子高麗文科直提學諱瑾之孫府使諱原老之曾孫門下侍中諱裕 | ||
- | 中其遠祖也妣貞夫人奉化鄭氏刑部尚書云敬其外祖也洪武己酉生公少治博士業 | + | 中其遠祖也妣貞夫人奉化鄭氏刑部尙書云敬其外祖也洪武己酉生公少治博士業 |
弱冠中生員試太宗乙亥親試登乙科第一等權知成均直講乙未拜藝文館應敎世宗 | 弱冠中生員試太宗乙亥親試登乙科第一等權知成均直講乙未拜藝文館應敎世宗 | ||
乙巳拜成均館大司成戊申出爲仁壽府尹己酉又拜大司成公再居是職長疏短劄戇 | 乙巳拜成均館大司成戊申出爲仁壽府尹己酉又拜大司成公再居是職長疏短劄戇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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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曰震孫繕工監正曰艮孫生員曰兌孫建功將軍曾孫男曰啓沃應敎有文集號草谷 | 孫曰震孫繕工監正曰艮孫生員曰兌孫建功將軍曾孫男曰啓沃應敎有文集號草谷 | ||
女適趙琮縣監震孫出也曰碩儒以族家子系艮孫後曰琨女適滄溪文敬仝郡守兌孫 | 女適趙琮縣監震孫出也曰碩儒以族家子系艮孫後曰琨女適滄溪文敬仝郡守兌孫 | ||
- | 出也以下繁不盡錄惜其遺事遺蹟不盡傳於世無由得其全然古人尚質記人善不妄 | + | 出也以下繁不盡錄惜其遺事遺蹟不盡傳於世無由得其全然古人尙質記人善不妄 |
下一字而譜牒載經明行修爲世師儒八字非高文盛德而能如是乎實公一部寫眞而 | 下一字而譜牒載經明行修爲世師儒八字非高文盛德而能如是乎實公一部寫眞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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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가선대부 행성균관대사성 황공 현 제단비명\\ | \_가선대부 행성균관대사성 황공 현 제단비명\\ | ||
\_우리 장헌왕(莊憲王)때 가선대부 행 성균관대사성 황공이 세상을 떠난 지 오백여년이나 | \_우리 장헌왕(莊憲王)때 가선대부 행 성균관대사성 황공이 세상을 떠난 지 오백여년이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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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오늘날의 평해 황씨 여러 선비들이 그 숨겨진 광채를 발굴하여 그 글을 돌에 새겨서 | \_오늘날의 평해 황씨 여러 선비들이 그 숨겨진 광채를 발굴하여 그 글을 돌에 새겨서 | ||
후세에 알리려고 한다. 대개 공(公)은 우리 선조 판서공과는 소동파와 황산곡의 의리처럼 | 후세에 알리려고 한다. 대개 공(公)은 우리 선조 판서공과는 소동파와 황산곡의 의리처럼 | ||
- | 세의(世誼)가 두터웠다. 돌 위에 | + | 세의(世誼)가 두터웠다. 돌 위에 |
돌아보건대 나는 못나서 식견은 없고 사람은 경박하니 어떻게 이것을 능히 다 서술을 하여 | 돌아보건대 나는 못나서 식견은 없고 사람은 경박하니 어떻게 이것을 능히 다 서술을 하여 | ||
먼 후일에 증명을 할 수 있겠는가? | 먼 후일에 증명을 할 수 있겠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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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공장군(建功將軍)이었고, | 건공장군(建功將軍)이었고, | ||
\_증손녀는 조종(趙琮)에게 출가했는데 그는 현감(縣監)인데 이는 진손의 자녀이다. 또 | \_증손녀는 조종(趙琮)에게 출가했는데 그는 현감(縣監)인데 이는 진손의 자녀이다. 또 | ||
- | 증손 석유(碩儒)는 일가집 아들로서 간손(艮孫)의 뒤를 이었고, 또 증손으로 곤(琨)이 있 | + | 증손 석유(碩儒)는 일가집 아들로서 간손(艮孫)의 뒤를 이었고, 또 증손으로 곤(琨)이 있었고, 증손녀는 창계(滄溪) 문경동(文敬仝)에게 출가했는데 그는 군수(郡守)이다. 이 둘은 |
- | 었고, 증손녀는 창계(滄溪) 문경동(文敬소)에게 출가했는데 그는 군수(郡守)이다. 이 둘은 | + | |
태손(兌孫)의 자녀이다. 이하는 너무 번다하여 다 기록하지 못한다.\\ | 태손(兌孫)의 자녀이다. 이하는 너무 번다하여 다 기록하지 못한다.\\ | ||
\_아깝게도 그 유사(遺事)와 유적(遺蹟)들이 세상에 다 전하지 못하게 되어서 그 온전한 | \_아깝게도 그 유사(遺事)와 유적(遺蹟)들이 세상에 다 전하지 못하게 되어서 그 온전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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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기미(1979(一九七九))년 3(三)월 외손 선성(宣城) 김설(金卨)은 삼가 짓고, | \_\_기미(1979(一九七九))년 3(三)월 외손 선성(宣城) 김설(金卨)은 삼가 짓고, | ||
\_\_1993(一九九三)년 계유년 9(九)월 후손 무섭(武燮)은 삼가 쓰다. | \_\_1993(一九九三)년 계유년 9(九)월 후손 무섭(武燮)은 삼가 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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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06.1747906984.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22 18:43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