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도구

사이트 도구


c3-030

문서의 이전 판입니다!


무술보발(戊戌譜跋)

 戊戌譜跋
 天下之水가 하나에서 始作되었으나 만가지로 가지런하지 못한 것은 여러가지로 分派된 때문이요. 天下之樹가 뿌리는 다르되 그 大小가 같지 않음은 枝條가 갈라진 탓이다. 陰陽이 五行의 精氣를 運行하는 것이 비록 치우치는 것이 온전한 것이 있으되 그 理致는 한가지다. 況次 사람인데야 그 복잡함이 더할 것이 當然하다.
 대저 族譜하는 法이 古代 周나라 제도에 氏族을 記籍하는 事務를 官에서 관장한 것으로부터 비롯된 것인데 이것은 系統을 밝히고 昭穆의 誤차를 없애기 爲한 것이었다. 氏族이 있으면 族譜가 없을 수 없는 것이다. 世上에 得姓한 것이 오래면 子孫이 많아져서 大同譜를 하면 篇帙이 더 많아지고 또 遺漏함도 많아지며 或은 無後하여 後世에 傳치 못하는 일도 있으므로 眉山 蘇氏가 派譜를 만들어낼때 簡略함을 取한 것은 오래도록 계속 하려는데 있었던 것으로 可히 따를만한 일이다.
 이에 우리 黃氏는 八道에 散居하는 子孫이 헤아릴 수 없이 많고 高官貴人이 代代로 이어서 배출되었으며 大匡공 같은 어른은 그 벼슬이 一人之下에 萬人之上인 崇秩에 오르셨고 그 後 몇대를 지나 襄武公이 李太祖의 建國을 도와 推忠協贊 功業彰著로 贈爵 封君하는 榮貴를 누렸으니 그 盛班함에 감탄치 않을 수 없다. 이와같이 이름 높은 門閥이 오늘에 東方의 大氏族이 되어 修譜하는 일이 어찌 重大한 일이 아니겠는가?
 丁酉年 봄에 族從 義模와 胄孫 元九氏가 大同譜 刊行을 發議하고 勞心焦思하며 豊基와 平海를 往來하면서 교섭하되 異論이 있어 不應하므로 大匡公으로 分派의 中祖를 삼고 그 以上의 系譜는 昭詳히 記載되어 있으니 그 以下의 子孫錄은 大匡公派 親族에 不過할 뿐이다. 따라서 役事가 省略되고 便覽하기 쉽게하니 실상 이것이 다 吾族의 一部 惇史라 하겠다.
 譜事가 끝나 印版에 붙일 것을 보고할 때 윗사람들이 나 역시 府使公의 後裔로서 一言이 없을 수 없다기에 敢히 참람함을 잊고 卷端에 이 글을 붙여 다음 世代에 알리고자 한다.
  戊戌 小春 後裔孫 夏模 謹跋

c3-030.1746956800.txt.gz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11 18:46 저자 ssi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