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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006

辛亥譜序 我東士大夫家莫不有譜譜者上以究祖宗之所由始下以明子孫之所自出也是 以譜不成則追遠之誠緩矣敦宗之義缺矣此仁人君子之必以是爲急而譜之所 以作也惟我平海黃氏肇自學士公桴海而東至於今一千八百二十有餘年矣由 羅及麗名公巨卿文章德業前後相望輝暎竹帛而系牒不傳文獻無徵以錦溪海 月兩先生之博學多知猶未詳焉搜聚輯錄撰成草譜而惟有望於後人也往在庚 寅始成板譜於豊基之錦陽以壽其傳追遠敦睦之誠籲可想也其後辛卯春川承 旨宗人燾氏自以漏譜之致圖成完譜而或有疎漏之歎且失謹嚴之體故吾黃之 貫平者不無恨於是矣庚戌之秋乃營修譜三派子孫合譜似難圖矣於是檢校評 理公兩派設所於豊基大匡公派子孫設廳於淸安各祖其祖各派其派而惟檢校 公支派海月公支派子孫旣漏於豊蝶願入於淸譜噫自祖宗視之則均是子孫何 必厚於此薄於彼且況海月公宗孫錫五甫以此派合印之意書劄勤擧譜廳僉議 同歸於一而但譜單晩到未果合錄於原譜付於追編以俟後人之攷覽焉剞劂告 成宗人屬餘爲序以餘居在譜所略知顚末故用付於卷尾雲爾

  崇禎紀元後四辛亥仲春下澣後裔孫墩謹識

[출처: 경진충경공파보(2001)]

신해보서

우리 동방 사대부가 들은 모두 족보가 있으니 족보란 위로는 조종의 근본을 연구하며 밝히고 아래로는 자손의 출생한 바를 밝힘이오 이로서 족보를 이루지 않으면 조상을 추모하는 성의가 완만하여지고 종족간에 돈목의 의가 없게 될것임에 어진 군자들이 반듯이 이를 급선무로 하여 족보를 하는 바라 오직 우리 평해황씨平海黃氏는 비로서 학사學士공께서 바다를 건너 동방에 자리하심이 우금 1820一千八百二十유여년이요 신라를 말미암아 고려에 이름에 명공거경과 문장덕업이 대대로 이어 빛이 났도다. 그러나 계첩이 전해지지 못함으로서 문헌상 증빙이 없어 금계錦溪 해월海月 양선생의 박학다문 하심에도 오히려 자세치 못함으로 찾고 거두고 모아 겨우 초보를 다듬어 오직 후세에게 바라는 바였드니 지난 경인庚寅(1770)년에 판보를 처음 이룩하여 풍기의 금양에 오래도록 그를 전함이 조상의 추원과 후예 등의 돈목에 성의를 가히 짐작함이라. 그후 신묘辛卯년에 춘천의 승지 도燾씨가 자기의 누보를 이유로 족보를 편찬이니 혹 소홀히 누보한것과 근엄한 체통을 실추함이 있어 우리의 평해黃 종인은 이를 유한으로 여기는 이가 없지 않더니 경술년庚戌年 가을에 다시 수보할 것을 계획하였으나 삼파 자손이 합보를 도모키 어려워 검교 평리 양파는 풍기에서 대광공파는 청안에서 보소를 설치 각조 기조로 각파 기파하였으나 오직 검교공지파와 해월공지파 자손이 풍기보에 누락한 분들이 청안보에 입보를 원하니 슬프도다. 이를 조상님들이 보신다면 다같은 자손인데 주구는 후하게하고 누구는 박하게 하겠는가? 하물며 해월공 종손 석오錫五씨가 청안보에 합보할 뜻을 서찰로 간청하니 첨의가 한가지로 합의나 단지 그 단자가 늦음으로 원보에 합류치 못하고 추편에 입록이니 후인은 상고해보기 바란다. 원고가 조판에 이르니 종인 등이 나에서 서문을 촉탁키로 나는 보소에서 머물매 아는 바가 약하여 이것을 권미에 붙여 둠이라.
  숭정기원후 4四 신해辛亥(1851 一八五一) 2월二月 하순 후예손 돈墩 근지

[출처: 경진충경공파보(2001)]

a-006.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5/19 07:57 저자 121.166.63.129